녹색위기/빅터 파파넥 지음/조영식 옮김/조형교육 펴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을 살펴보자. 우리는 인간의 아이디어가 그들의 기술과 결합돼 창조된 인공물의 세계에 둘러싸여 있다.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 버린 인공환경이라는 공간 속에서 이제 우리는 편리함이라는 혜택과 맞바꾼 자연의 황폐화에 대한 반성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인간이 자연과 화해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극단적인 부분으로까지 치닫게 되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해결점들을 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디자이너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인 빅터 파파넥이 쓴 ‘녹색위기’는 구체적인 문제점과 해결점을 디자인, 즉 우리를 둘러싼 인공물들과의 관계성에서 점검하고 있다.
빅터 파파넥은 궁극적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국가를 배경으로 한 건축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디자인을 총망라해 분석한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디자이너들에게 반성을 요구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비단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진 자들만의 책임이 아니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다소 진부한 듯한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자원 고갈 등의 문제는 여전히 인류가 피해갈 수 없는 절체절명의 사안이다. 이런 문제들이 발생한 데는 분명 디자이너들도 그 책임의 일부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그들의 사회적·윤리적 책임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에 관한 부분이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가 그들의 창조적인 작업 과정과 조형적 방법의 대안들을 모색한다면 보다 총체적이고, 효과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해보는 것이다.
‘왜 하필 디자인인가’고 반문한다면 디자인은 문제해결의 과정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구 환경의 심각한 변화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도구와 우리가 하고 있는 행위의 결과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이런 현안의 중심에서 디자인을 제외시킬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의 관점을 역사적 측면으로부터 지리학적이고 인류학적인 것으로 바꾼다면 파푸아뉴기니의 조그만 어촌에서부터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선 내의 매우 위험한 기술적 환경에 이르기까지 각기 상이한 환경에서 발견하게 될 혁신과 기능, 그리고 그것에 의한 기쁨까지 쉽게 확인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고려해야 할 부분은 우리가 이 아름다운 대지에서 행하고 있는 것들이 미래의 우리에게 엄청난 화를 끼치게 될 재앙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 문제의 원인은 바로 인간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출발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르네상스 이후의 신 중심적 패러다임이 인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철학·과학·예술을 포함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전영역에 걸쳐 눈부신 발전을 가져오게 했으며, 이는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인간만을 중심으로 한 패러다임이 결국 오늘날 위기에 처한 지구라는 결과를 야기시켰다. 그러므로 가치 척도에 대한 재편이 우선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한 해결의 실마리는 찾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 문화·사회·기술에 대한 가치매김의 척도로서 인간과 자연 공존의 패러다임이어야 하며, 소위 굿디자인을 구분하는 기준 역시 인간과 자연 공존에서 출발해야 한다. 적어도 디자이너 개인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상위개념을 가치로서 인식한다면 우리의 미래가 결코 어두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저 단순한 쾌락에 즐거워하기에 우리의 환경은 너무 심하게 훼손됐고 그로 인한 문제점들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자각하고, 반성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문제해결의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접하는 디자인을 통해 바라본 문제점과 해결 방안이 비단 디자이너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주체인 우리 스스로가 공감할 부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읽어보면 아마도 놀랍고, 답답하고, 흥미로운 복잡미묘한 감정의 교차까지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연세대 교수 y2k@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