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서점에서 한국 작가가 쓴 과학소설(SF:Science Fiction)을 찾아본 적이 있는가.
외국 작가가 쓴 것은 많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캄 한국 작가가 쓴 소설은 적다. 공상과학 ‘영화’는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한국 감독들이 외면하고 있다고 쳐도, 소설은 상상력만 있으면 되는데도 한국판 과학소설은 찾기 힘들다.
‘듀나’라는 필명을 쓰고 있는 작가는 손에 꼽을 만큼 희귀한 한국 과학소설가다. 소설가 복거일은 듀나가 펴낸 ‘대리전’의 추천사에서 “과학소설에 관한 한, 우리 독서 시장은 불모지에 가깝다”며 독자나 작가나 과학소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한국에서 과학소설이 발달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만 집어내자면 한국인은 ‘반(反)사실’ 추론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사실추론이란 일어난 사실을 일어나지 않았다고 가정하고, 그 다음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혹은 1997년 한국이 금융위기를 맞지 않았다면, 한국의 금융시장은 어떻게 재편되었을까 하는 질문이다.
당연한 듯 받아들인 사실을 부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질문은 과학이 발전하는 핵심 원동력이기도 하다. 과학계의 새로운 발견은 모두 이전의 사실을 의심해보는데서 시작됐다. 일본의 노벨 화학상 수상자 노요리 료지는 한 인터뷰에서 “시대를 뒤흔든 연구들은 주류에서 벗어난 이단적인 사고방식에서 출발했다”고 주장한다.
사회의 주류가 사실이라고 따르는 것을 그렇지 않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한국에선 대담한 생각이다. 대담한 생각은 종종 ‘어리석은’ ‘말도 안 되는’ ‘위험한’ 생각과 동의어로 간주된다. 관계를 중요시하는 한국인의 정서로 볼 때, 이 같은 비난은 참기 힘들다. 과학소설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이유는 이렇듯 한국사회가 대담한 사고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소설가 듀나는 독특하게도 그의 신상을 일절 밝히지 않는다. 언론과의 인터뷰도 이메일로만 한다. 이런 이유에 대해 그는 “가기 싫은 곳에 참여할 필요가 없고, 맺고 싶지 않은 인간관계를 처음부터 거절할 수 있다”며 “한국사회는 이게 힘들다”고 밝힌 바 있다. 익명을 유지하는 것이 대담한 생각을 펼쳐낼 수 있는 길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듀나의 말에서 한국사회는 아직도 권위주의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때로는 아이보다 못한 어른들이 마치 이 세상의 진리를 모두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군림할 때, 사회는 대담한 사상가를 생산하지 못한다. 대담한 사상가들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는 이들이 우리의 현실과 실현할 있는 이상과의 괴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괴리를 통해 사회는 더 발전할 수 있는 이유와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박성원 하와이미래학연구소 연구원 seongwon@hawaii.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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