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기후변화

 얼마 전 우리는 북극곰이 처한 현실을 목격했다. 한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속 북극곰은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가운데 생명을 잇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빙산이 녹는 바람에 이들이 뛰어놀 환경은 점차 줄어들었다. 먹이 부족으로 같은 종끼리 혈투를 벌여야만 했다. 그들은 왜 환경이 달라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은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

 인간이 처한 현실도 북극곰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파키스탄에서는 최악의 집중호우로 국토의 20%가 침수되고 20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흔히 추운 지역으로 인식되는 러시아의 모스크바는 지난해 여름 기온이 38.2도까지 올랐다. 가뭄으로 3만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중국 산둥성에서는 60년 만의 겨울 가뭄으로 24만명이 식수난을 겪었다.

 먹을거리 부족도 위협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세계 최대 농산물 생산국인 중국에서는 지난해 여름 폭우로 채소와 벼의 생산량이 30% 이상 줄어들었다. 이는 자연스레 농산물 가격 폭등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흐름은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많은 학자들은 그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한다. 기후변화란 평균 기후와 최근의 기상이 달라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지금까지 지구상에는 다섯 번의 대규모 생물 멸종이 일어났는데 대부분 급격한 기후변화가 원인이었다. 공룡의 멸종이나 기원전 17세기 아리안족의 대이동, 아일랜드의 대기근 등은 모두 기후변화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기후변화가 과거와 달리 더욱 급속도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0년간 지구 평균기온은 약 0.74도 상승했는데, 이 상승률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100년간 약 1.4배 늘어났다. 기상이변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 기상이변이란 과거 30년 동안 한 번도 관측되지 않았던 기후 상태가 나타난 것을 말한다.

 농촌진흥청 기후변화생태과장인 강기경 박사는 ‘기후변화와 우리 농업’이라는 보고서에서 “갑작스러운 기상이변이 발생해 세계 곳곳에서 막대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야기한다”며 “기후변화는 인류 생존을 위한 기본 조건인 먹을거리의 안정적 수급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농지가 유실되고 물 부족 현상이 발생하는 등 농업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 2009년 태백에서는 봄 가뭄으로 농지의 물이 바닥나고 제한급수가 이뤄지기도 했다. 전 세계 농산물의 40%는 관개농업에 의존하고 있어 물 부족은 농업에 심각한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후변화는 주산지 북상 등의 재배지 변화 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라봉은 전북 김제까지, 무화과는 충북 충주까지 주산지가 북상했다. 현재 포도는 강원 영월에서, 사과는 경기 포천에서도 재배하고 있다. 전라남도 지방에서 주로 재배하던 녹차는 강원 고성까지 북상했다.

 병해충과 잡초의 확산도 골칫거리다. 이전에는 국지적으로 발생했던 벼줄무늬잎마름병은 최근 충남과 전북지역에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 꽃매미는 따뜻한 겨울 날씨가 지속되면서 도시에서 관찰될 정도로 넓게 확산됐다. 외래 잡초의 유입도 토종식물과 농작물을 위협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농작물 품질 저하의 원인이 된다. 기온이 과도하게 높으면 벼가 불임이 될 수 있다. 일조량이 부족하면 쌀알이 제대로 익지 못해 속이 하얗게 변하거나 모래처럼 부스러지는 불량미가 되기도 한다. 채소는 쉽게 물러지고 과실은 맛이 제대로 들지 않는다.

 기상청은 한반도 평균기온이 점차 상승해 21세기 말에는 아열대 기후로 변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지금과 같은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태백산과 소백산 인근을 제외한 대부분이 아열대 기후로 변한다는 것이다. 심할 경우 겨울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 기상청의 말이다.

 기후변화 문제는 우리나라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식량 문제 역시 단순한 질의 하락이 아닌 양의 부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세계적인 분쟁의 원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옵서버지가 지난 2009년 보도한 미국 정부의 비공개 보고서에는 “앞으로 인간의 갈등과 전쟁은 종교, 이데올로기, 민족주의 등이 아니라 급변하는 기후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생존 노력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해수면 상승 등으로 방글라데시 등의 국가는 더 이상 사람이 거주하지 못할 것이며 20년 후에는 식량 쟁탈을 위한 폭동과 내부갈등으로 인도·남아프리카·인도네시아가 국가 붕괴 위기에 이를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문제가 확대되지 않으려면 발 빠른 대응이 요구된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오해가 대처를 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구 기후변화의 원인은 인간이 아니다’ ‘현재의 기후변화는 자연적 주기의 일부분일 뿐이다’ ‘지구 온난화는 혹한을 사라지게 하므로 좋은 일이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기엔 이미 늦었다’ 등이 대표적인 오해다. 과거에도 기후는 자연적으로 변화했지만 현재보다 이산화탄소의 변화가 훨씬 적었다. 또 전체적으로 해수면이 상승해 동식물이 멸종 위기에 직면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정책적 대응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미 몇몇 국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92년 만들어진 UN 기후협약이다. 선진국은 2005년 교토의정서에 따라 2008~2012년에 1990년 대비 평균 5.2%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여받았다. 미국도 오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1990년 대비 80% 감축하기로 했다. 일본은 전 산업분야의 에너지 절감 정책을 추진 중이다.

 식량 보급에 대한 실질적인 노력도 관측된다.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안정적 생산 기반을 구축하는 대응기술 개발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농식품부에서 지난 4월 기후변화 대응 기본계획안을 통해 분야별 실천과제 등을 마련했다. 농업·축산·산림·수산·수자원·식품·유통 분야별 추진과제를 통해 2020년까지 농업분야 탄소배출량 35%를 줄이고, 흡수량은 6%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탄소성적표시제와 탄소상쇄활동에 대한 인센티브정책, 탄소포인트제도 등을 통해 적극적인 참여도 이끌어낸다는 전략이다. 강 박사는 “온 국민이 함께 노력하는 생활공감형 기후변화 대응책을 마련해 기후변화의 위기를 넘어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창규기자 k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