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쇼크`...정부 목표치 수정 불가피

농산물을 중심으로 소비자물가가 5% 넘게 치솟으면서 서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는 기상여건이 호전되면서 9월부터 물가가 3%대 후반으로 내려앉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기상이변이 `상시화`된 상황과 9월 초 추석수요 집중, 국제유가의 추가 급등 가능성 등 변수가 많아 이런 전망이 들어맞을지는 미지수다.

아울러 정부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연간 4.0% 이하로 묶겠다는 목표를 고수하고 있지만 8월 물가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물가 목표치를 수정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농산물·금반지 물가급등세 주도

통계청이 1일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3%로 지난 2008년 8월(5.6%)이래 전년 같은 달 대비 상승폭이 가장 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넘어선 것은 지난 2008년 6월부터 9월까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처럼 물가가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농산물 가격 고공행진의 영향과 금값 급등세의 영향이 컸다.

기획재정부 임종룡 1차관은 "8월 물가의 전월대비 상승률 0.9% 가운데 채소류와 금반지가 기여한 비율(기여율)을 71.4%로 보고 있는데 채소류가 53.8%, 금반지가 17.6%"라고 설명했다.

농산물 가격은 8월 들어서도 집중호우 등 우기가 이어지면서 일조량 부족으로 작황이 부진한 것에 더해 산지 출하작업이 지연되면서 필요한 물량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큰 폭으로 올랐다. 지난 6월1일부터 8월20일까지 강수일수는 44.4일로 평년수준보다 11.8일 많았고, 이 기간 강수량은 1천30㎜로 평년보다 165% 많았다.

농산물은 이런 영향에 따라 8월에 15.6% 급등했고, 수산물과 축산물도 각각 10.3%, 9.2% 오르는 등 상승폭이 컸다. 신선식품지수를 살펴봐도 신선채소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1.6%나 급등했으며 신선어개와 신선과실은 각각 10.8%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동월 대비 상승폭을 살펴보면 건고추 가격의 급등으로 고춧가루가 무려 40.3%의 기록적인 상승률을 보였으며, 배추 32.2%, 고구마 34.5%, 달걀은 30.2%나 뛰어 올랐다. 7월에 비해서는 배추가 116.9%, 무가 126.6% 올라 갑절 이상으로 가격이 뛰었다.

기획재정부는 "채소류는 물가비중이 1.45%에 불과하지만 상승률이 전월비 31.8%로 매우 높아 8월 물가상승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고춧가루나 달걀은 기초 식재료로 많이 쓰이는 품목이라 식품가격 전반의 상승세를 부추겼다. 식품 물가는 7.3%나 뛰어 생활물가지수(5.2%) 상승률이 5% 선을 넘어서는데 주 역할을 했다.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 등으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은 안전자산 선호현상을 강화시켜 국제금값 상승세를 부추겼고 이는 고스란히 국내 금값 급등세로 이어졌다. 금반지 값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9.1%나 뛰었다.

임 차관은 "8월 소비자 물가는 채소류와 금반지 가격상승이 전반적인 물가상승을 견인했다"면서 "그러나 금반지의 경우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서 소비자물가지수 산정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월세난도 심화되면서 물가 급등세에 기름을 붓고 있다.

전세는 5.1% 올라 지난 2003년 3월(5.3%) 이후 가장 높은 상승세를 보였고, 월세는 3.0% 올라 1996년 5월(3.0%)이래 가장 많이 뛴 것으로 나타났다. 집세는 전체적으로는 4.4% 올라 2003년 2월(4.4%) 이래 가장 오름폭이 컸다.

16개 광역시·도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대전이 6.0%로 가장 높았다.

부산(5.9%), 대구(5.8%), 경북(5.7%), 전남(5.6%), 전북(5.6%), 강원(5.4%), 경남(5.4%), 충북(5.2%), 충남(5.2%) 등의 순으로 물가가 많이 올랐으며, 서울과 인천, 제주 등 3개 광역시·도만이 물가 상승률 4%대를 기록했다.

◇물가 年 4% 목표치 달성 불가능할 듯

정부는 아직은 물가 상승률을 연간 4.0% 이하로 묶는다는 목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채소류 등 농산물이 8월 하순 이후 기상여건 개선으로 수급이 점차 정상화되고, 국내 기름값은 당분간 현재의 수준에서 크게 상승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기대고 있다.

아울러 9월에 SK텔레콤, 10월에 KT가 통신요금 기본료를 1천원 인하하는 것도 정부는 물가의 하방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9월 물가상승률이 3.6%로 높았기 때문에 기저효과도 9월 물가수준이 하락할 것이라는 정부의 전망에 힘을 더한다.

기획재정부는 "이런 물가여건을 감안하면 9월 소비자물가가 3%대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9월 물가는 기상여건, 글로벌 경제침체, 중동사태 추이 등 외부적 요인에 따른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나, 현재 기상여건이 개선되고 있고, 기저효과 등으로 8월보다는 여건이 개선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임 차관 역시 현재로서는 물가상승률과 성장률 등 거시경제 전망치를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생각은 지나치게 `장밋빛`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월부터 8월까지 물가상승률이 예상을 뛰어넘게 오르면서 나머지 9~12월 월별 물가상승률을 매월 3% 정도로 묶어야 4%가 겨우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제유가와 금값 등 원자재가격이 정부의 생각대로 움직인다는 보장도 없다.

이에 따라 물가가 당장 9월부터 급전직하하지 않는 이상 정부의 4.0% 물가 목표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LG경제연구원의 이근태 연구위원은 "8월 물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올랐다"며 "이런 오름세는 농산물 가격 급등에 주로 기인한 것이지만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 역시 많이 올랐기 때문에 정부가 연간 4% 물가 목표치를 달성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