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동 ㈜재용 대표 ljd3676@hanmail.net
필자는 최고의 문구 부품업체를 만든다는 꿈을 안고 창업해 지난 20년간 문구용 닙(펜촉)과 잉크 필터 등을 생산하고 있다. 마카펜 촉으로 사용되는 닙은 작지만 소재에 따라 필기감이 달라질 만큼 중요한 소재다. 세계 시장은 품질 좋은 일본산 제품이 장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문구용 닙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한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일본과 경쟁하는 게 쉽지 않다. ‘왜 우리는 이런 제품을 만들지 못할까’라는 생각에서 의욕적으로 시작한 사업이었으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사업 초기 첫 제품을 개발해 거래처를 찾아 갔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서러워 눈물 흘린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제품을 보여주기도 전에 “우리가 제품을 검토해 주는 개발실이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우리 같은 작은 기업이 과연 연구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술개발은 먼 나라 얘기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부의 ‘첫걸음 부품소재 기술개발 사업’ 소식을 접했다. 이 사업은 지식경제부가 정부 연구개발(R&D) 과제에 접근하기 어려운 부품소재 강소기업을 발굴해 기술 개발은 물론 비용절감, 생산성 향상 등 경영 노하우까지 도와주는 친서민형 R&D 지원 사업이다.
마침 정부가 대중소 기업 동반성장을 강조하던 터라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신청서를 접수했다. 730여개나 되는 기업들이 몰린 데다 정부 R&D 신청 절차는 예상외로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중소기업진흥공단 실무자들이 직접 회사를 방문해 기술 분석과 국내외 동향, 지식재산권 현황, 기술개발 전략 수립, 자금 조달 계획 등 사업 계획서 작성 과정 전반을 도와줬다. 사업 신청 과정의 경험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지난 7월 우리 기술이 최종 과제로 선정됐음을 통보받았다. 16대 1의 경쟁을 뚫고 모두 46개 업체가 뽑혔다. 희망이 보였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20년 전의 꿈을 다시 실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살아났다.
지난 달 27일 46개 회사 대표들과 지식경제부 등 정부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서울 명동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발대식은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사실 이날 아침 최중경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행사가 제대로 열릴지 내심 걱정했다. 하지만 최 장관은 정시에 행사에 참석해 그 자리를 빛내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원래 8개 업체 대표에게만 지정증을 수여하기로 했던 계획도 즉석에서 바꿨다. 46개 회사 모두에게 일일이 지정증을 전달하며 악수를 청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등 따뜻한 관심을 나타냈다. 문전박대를 밥 먹듯 당하던 옛 생각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웠다.
발대식이 끝난 후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은 과제가 제대로 수행될 수 있도록 전담 코디네이터 제도 운영과 법률 자문, 전문 연구인력 및 장비도 지원해준다고 했다. 영세 기업에게도 제대로 R&D의 첫 걸음을 뗄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이 많다는 말이 실감났다. 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동반성장 R&D가 아닐까 싶다.
이번에 선정된 46개 기업의 작년 평균 매출액은 약 35억원이다. 50억원 미만 기업이 전체의 71.8%에 달한다. 필자와 같이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초대졸 이하 학력의 대표가 15명이나 된다. 이처럼 작은 기업들에게 첫걸음 기술개발 사업은 큰 힘이 된다.
필자는 이제 최고의 문구 부품업체를 만들겠다는 ‘꿈’을 다시 가슴 속에 품을 수 있게 됐다. 첫걸음 기술 개발 사업을 준비한 정부에 진심어린 고마움을 전한다. 이같은 애정으로 첫 발을 내디딘 이 사업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변함없이 지속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