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말장난

 도가 지나쳤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된 말장난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숨진 채’를 ‘숨쉰 채’로 바꿔 퍼뜨리는 바람에 멀쩡히 살아있는 유명 연예인들이 사망설에 시달려야했다.

 며칠 새 유명 연예인 두 명이 표적이 됐다. SNS를 통해 전달되고 다시 삭제된 통에 진원지 파악도 어려웠다. 누가 또 다시 대상이 돼서 살았다 죽었다를 반복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의 특성을 교묘하게 이용한 치기어린 장난이었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참기 힘든 곤욕이다.

 이쯤 되면 장난이 아니다. SNS의 익명성을 악용한 정신적인 살인이다. 훌륭한 소통 도구를 악질적인 살인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게다가 집단이 공동으로 저지르면서 죄의식조차 희미하다. 그래서 이번 말장난은 더욱 고약하다.

 우리말의 특성 때문에 말장난, 또는 글장난은 예전부터 자주 사용됐다. 격식을 따지는 부류들은 ‘언어유희(言語遊戱)’로 표현해왔다. 언어유희란 동음이의어나 각운 등을 이용해 재미있게 꾸미는 말 표현이다. 이전의 말장난은 품격이 있었다. 지배층을 비판하는데 주로 사용됐다. 풍자가 주된 형식이었다. 운문식 억양을 사용해 묘미를 살리는 봉산탈춤의 말장난이나 기득층을 꼬집는 판소리 춘향전의 그것은 멋스럽다.

 별다른 뜻은 없어도 소리와 뜻을 이중적으로 반복해 말놀이 형태로 발전된 민요 ‘어희요(語戱謠)’는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묘미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서양에서도 말장난(pun)은 고대부터 다양하게 애용됐다. 성경에서도 신격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 ‘그리스어 말장난’ 흔적이 나타난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는 희극뿐만 아니라 비극에서 말장난을 통해 진지한 분위기를 더 심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장난에도 정도가 있고 예의가 있는 법이다. 해학이나 풍자에 사용하지는 못할망정 불순한 의미를 담은 살인 도구로 이용해서야 되겠는가. 모바일 시대의 언어 사용, 좀 더 진지해져야할 때다.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