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019] 국내 첫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 개발 <1988년 6월>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보급이 본격화하면서 국내에도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당시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안철수 안랩 이사회 의장 겸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바이러스 때문에 고민하던 후배를 위해 직접 프로그래밍을 해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이 우리나라 백신(Vaccine)의 원조라 할 수 있는 `V3`의 모태 `V1`이었다.

미켈란젤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디스켓. 안철수 원장이 자필로 쓴 제목이 적혀있다.
미켈란젤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디스켓. 안철수 원장이 자필로 쓴 제목이 적혀있다.

무료 백신 프로그램이 크게 반향을 일으키자 안 원장은 1995년 안철수연구소(현 안랩)를 설립, 본격적으로 백신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즈음 트렌드마이크로 등 해외 유명 안티바이러스 업체들도 국내에 들어와 사업을 시작, 백신 시장도 경쟁 체제가 됐다.

◇후배 제안으로 개발한 백신=1988년 6월 당시 의대 박사 과정에 있던 안철수 원장은 컴퓨터 바이러스 `브레인`을 치료하기 위해 바이러스 검사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안 원장은 “책을 읽다가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보고 관심을 가졌다. 취미였던 컴퓨터와 직업인 의학 분야를 합친 개념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발동해 집에 있던 디스켓을 살펴보니 두 장이 브레인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더라”고 컴퓨터 바이러스와의 첫 만남을 회고했다.

그는 처음 접한 브레인 바이러스를 철저하게 해부, 컴퓨터 언어로 어렵지 않게 치료했다. 백신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우연하게 찾아왔다. 브레인 바이러스를 치료한 지 며칠 후에 찾아온 후배가 컴퓨터 바이러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안 원장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컴퓨터 언어로 치료하는 방법을 여러 차례 설명했지만 후배는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답답해하던 후배가 “말로 설명하지 말고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게 차라리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 이 얘기를 들은 그는 하룻밤을 꼬박 새워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램을 만들고 `백신`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바이러스 검사 소프트웨어를 백신 소프트웨어라고 부르게 된 것이 이때부터다.

안철수연구소 설립 초기 당시 대표였던 안철수 원장에게 온 고객의 바이러스 치료 요청 편지.
안철수연구소 설립 초기 당시 대표였던 안철수 원장에게 온 고객의 바이러스 치료 요청 편지.

◇잡지를 통해 처음 보급=우여곡절 끝에 만들어낸 백신을 여러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알리기 위한 홍보 수단으로 전문 잡지를 이용했다. 당시는 인터넷은 고사하고 PC통신 보급도 활발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안 원장은 컴퓨터 전문지인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 연락해 자신이 개발한 백신에 대한 글을 실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 잡지사 허락을 받은 후 바이러스 분석 내용과 백신 제작 방법을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고 백신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1988년 8월호에 바이러스 방역센터를 설립했다는 공지문이 실렸다. 사용자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디스켓을 잡지사에 가져오도록 했다. 안 원장이 이를 가져가 한 달간 백신을 개발, 디스켓에 저장해 잡지사에 맡기면 사용자들이 잡지사를 찾아와 백신 프로그램을 복사해갔다. 백신 무료 배포는 이처럼 오프라인에서 이뤄졌던 것이다. 안 원장은 본업인 의대 박사 과정과 군의관, 의대 교수를 거치는 7년 동안 새벽 3시에 일어나 백신을 개발했다. 예루살렘, 미켈란젤로 등 각종 바이러스가 등장할 때마다 안 원장이 개발한 백신이 방역군 역할을 했다.

안철수 안랩 이사회 의장 겸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안철수 안랩 이사회 의장 겸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백신`에서 `V3`로 재탄생=안 원장이 명명한 `백신`은 LBC 바이러스 퇴치 기능이 추가되면서 이름을 `백신 Ⅱ`로 바꿨다. 이어 예루살렘 바이러스 퇴치 기능이 포함되면서 명칭에 `플러스(PLUS)`가 덧붙여졌다. 1991년 초에는 프로그램을 모두 바꿔 `백신 Ⅲ(V3)`로 재탄생했다. V3는 1995년 3월 안철수연구소가 설립되는 모태가 됐다. 이후 V3를 모(母) 브랜드로 고정하고 치료할 수 있는 바이러스 수를 버전으로 표기해 뒤에 붙이는 방식으로 바꿨다. IT 환경이 변화되면서 이 명칭도 여러 형태로 세분화됐다. 도스용은 `V3+`로 불렀으며 1999년에 `V3+ Neo`로 발전했다. V3+ Neo는 시그니처 수의 증가로 당시 사용하던 3.5인치 디스켓 두 장이 필요해 실제로 이용하기가 어려웠다.

한동안 무료백신 개발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던 안철수연구소는 당시 무분별하게 등장했던 경쟁 무료 제품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유료 제품을 무료로 변경하는 결단을 내리고 무료 제품 `V3 Lite`를 연이어 출시했다. Lite 제품이 나온 이후에 V3+ Neo는 단종했다.

안철수연구소는 1995년 12월 윈도용 `V3Pro`를 내놓고 1996년 국내 최초 윈도95용 응용소프트웨어인 `V3Pro 95`를 발표했다. 이외에도 `V3 VirusWall` 시리즈, `V3 NetGroup` 시리즈, 온라인 백신 `MyV3` 등으로 제품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V3가 첫선을 보인 지 2012년 기준으로 24년이 흘렀다. 급변하는 IT 분야에서 긴 세월 동안 V3가 여전히 명성을 유지하는 비결은 기술 혁신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안랩의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디펜스(AhnLab Smart Defense)` 기술을 적용, 하루 5만 개 이상씩 증가하는 악성코드에 대응하면서도 용량은 더 가벼워지고 작동은 더 빨라졌다. DNA 스캔, V3 뉴 프레임워크 등 원천 기술의 혁신으로 높은 진단율과 빠른 검사 속도, 다양한 위협의 조기 차단 등 막강한 기능으로 무장됐다.

안 원장이 브레인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만든 첫 백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V3의 원천 기술은 V3 제품군뿐 아니라 네트워크 보안 장비 등에 탑재돼 통합 솔루션을 이룸으로써 최신 지능형 보안 위협(APT) 공격 대응에 핵심 역할을 해내고 있다.

다양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도 발전했다. 스마트폰 백신(V3 모바일, 안랩 모바일센터), 온라인 금융보안 서비스(안랩 온라인 시큐리티), 네트워크 보안 장비(트러스가드, 트러스와처), 망분리 솔루션(트러스존), 산업시설용 솔루션(트러스라인) 등 각종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장비에 탑재됐다.

V3는 국내 2400만명 이상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무료 백신으로 개인용 PC 보안은 물론이고 국가 차원의 사이버 재난 시 앞장서 손실을 막았다. 또 글로벌 사회 공헌의 일환으로 지난해 중국에 이어 일본까지 해외로 V3 Lite를 확대 배포하며 V3의 가치와 의미를 세계인과 함께 나누고 있다.

V3는 아시아 지역에서 탄생한 가장 오래된 보안 소프트웨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보안 기업들이 세계 보안 시장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자국 시장에서 50% 이상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흔치 않은 프로그램이다. ICSA 인증, VB 100% 어워드, 체크마크 인증 등 대표적 국제 인증을 모두 확보, 비서양권 업체 중에서는 국제 보안 인증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해외 여러 나라에 자체 브랜드로 수출되는, 사실상 유일한 소프트웨어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최초 V3 로고
최초 V3 로고

◆주사기 모양의 V3 상표 디자인 탄생 배경

주사기 모양을 형상화한 V3 디자인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흥미로운 얘기가 숨어 있다. 안철수연구소 설립이 임박했을 당시 V3 사용자였던 두 명의 대학교수가 디자인해 무상으로 증정했다. 주영철 당시 수원여전 사무자동화과 교수가 안 교수의 의학계 선배인 이경용 박사로부터 안철수연구소 설립 취지를 듣고 지인인 한백진 단국대 산업미술학과 교수에게 제안해 공동 제작에 들어갔다.

두 교수는 백신 프로그램 이미지에 맞게 V3 상표를 주사기 이미지로 형상화해 어떤 바이러스라도 물리칠 수 있는 강력한 이미지를 담았다는 후일담이 전해지고 있다.

[표] V3 연혁(PC·스마트폰용)

1988년 6월Vaccine, c브레인 바이러스 퇴치용

1989년V2, LBC 바이러스 퇴치 기능 추가

1989년V2+, 예루살렘 바이러스 퇴치 기능 추가

1991년V3(Ver.37), 37종 바이러스 퇴치. V3로 명칭 변경.

1996년 3월안철수연구소 설립

1995년 7월프리웨어 V3를 셰어웨어로 전환, V3+로 공식 출시

1999년 7월셰어웨어 V3+ Neo 출시

1995년 12월V3Pro(도스용) 발표

1996년 3월V3Pro 95(윈도 95/3.1용) 발표. 국내 최초 윈도용 응용 프로그램

1996년 6월V3Pro 95 1.5버전 발표

1997년 3월V3Pro 97 발표

1998년 4월V3Pro 98 디럭스(윈도 95/98용)

1999년 9월V3Pro 2000 디럭스(윈도 95/98/NT 워크스테이션용),

1999년 11월V3Pro 2000 디럭스 서비스 팩 1(SP1)

2000년 4월온라인 백신 서비스 `MyV3` 출시

2001년 11월V3Pro 2002 디럭스(윈도 95/98/ME/XP용)

2002년 3월V3Pro 2002 디럭스 서비스 팩 1(SP1)

2002년 9월V3Pro 2002 디럭스 서비스 팩 2(SP2)

2003년 6월ACS(AhnLab Client Security)에 통합

2004년 3월V3Pro 2004 출시

2004년 5월V3Pro 마린블루스 출시

2004년 8월V3Mobile for WI-PI 서비스 개시

2005년 5월시스코 NAC 연동용 V3Pro 2004 for NAC 출시

2005년 11월심비안 OS용 모바일 백신 V3Mobile for Symbian 개발 완료

2006년 7월PC용 통합보안 솔루션 V3 인터넷 시큐리티 2007 전 세계 동시 출시

2007년 5월인터넷 토털 PC 케어 서비스 `빛자루(Vitzaru)` 서비스 개시

2008년 4월PC주치의 개념 온라인 보안 서비스 `V3 365 클리닉` 출시

2008년 12월V3 Lite 정식 서비스

2009년 4월V3 인터넷 시큐리티 8.0 출시

2010년 3월스마트폰 보안 솔루션 V3 Mobile for Android, V3 Mobile+ for iPhone 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