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규(가명.17세)군은 24시간 중 11시간 이상을 PC방에서 보내는 자칭 ‘게임의 고수’다. 그의 부모님은 게임중독이라며 매일 같이 잔소리를 쏟아 내지만, 게임을 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근심 걱정을 털어버릴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 밤 10시가 되자 PC방에서는 청소년들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그러나 박 군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부모님 몰래 적어둔 주민등록번호로 성인 인증을 간단히 거치면 밤새 게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박 군에게 있어 게임 규제망은 구멍 난 그물에 불과해 보인다.
청소년 인터넷 게임 건전 이용제도, 일명 ‘셧다운제’가 시행된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2011년 11월 20일부터 시행된 ‘셧다운제’는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심야 6시간 동안 인터넷 게임 제공을 제한하는 청소년 보호법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청소년과 학부모, 그리고 게임업계까지 셧다운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8일 방송된 채널IT <생방송 스마트쇼>에서는 셧다운제 1년, 그 허와 실에 대해 심층 취재했다. 이 날 방송에서 제작진은 늦은 시간까지 게임을 하는 학생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PC방으로 들어갔다. 10시가 한참 지난 시간에도 어려 보이는 학생들이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고 심지어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취재결과 주민등록증을 사고 판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고3이 되는 성동준(가명.18세)군은 “선배한테 주민등록증을 빌려오거나 파는 경우가 많다”며 93년생은 3만원, 92년생은 만원 등 가격도 천차만별이다”라고 털어놨다.
이렇게 운영 방식과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셧다운제가 시행된 후, 청소년 인터넷 게임 감소효과에 대해 여성가족부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여성가족부는 “밤 12시 이후 심야시간대 16살 미만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이용률이 시행 전 0.5%에서 0.2%로 0.3%포인트 감소했다"며 "게임 이용 억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병헌 민주통합당 의원이 공개한 `청소년 인터넷게임 셧다운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이 심야시간에 온라인 게임을 한 청소년 중 부모의 동의를 받아 부모 아이디를 쓴 경우가 59%,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쓴 경우가 41%나 달했다. 사실상 감소 효과에 충분히 의문을 제기할 만한 자료다.
그러나 학부모들과 청소년 단체는 학생들의 게임 중독 때문이라도 셧다운제는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특별시립 청소년미디어센터 신순갑 관장은 “실제로 청소년을 교육하는 입장에서는 셧다운제가 효과있다고 생각한다”며, “중독자들에 대한 치료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만큼 셧다운제를 통해서라도 게임중독자의 양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셧다운제는 인터넷으로 접속하는 PC게임과 CD 패키지 게임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제도의 장벽에 막혀 게임을 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제한을 받지 않는 곳을 찾아가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어 보완이 시급한 상황이다. 또 국내 게임산업의 성장을 왜곡시키고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찮다. 그래서인지 국내 게임업체들은 청소년 게임들 개발보다는 성인용 게임으로만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2011년과 2012년 상반기를 비교했을 때 성인용 게임물의 비중이 50% 이상 늘어났고, 청소년 이용가 게임은 64.1%에서 55.3%로 10% 정도 감소했다.(출처: 청소년 인터넷게임 셧다운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현상이 계속될 경우 청소년들이 즐기는 게임은 정작 해외 게임사에게 내줄 수 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김성곤 사무국장은 “청소년들이 문화와 놀이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하다”며, ”무조건 법으로 강제하기 보다는 청소년 스스로의 자율적 판단을 배양하는 예방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셧다운제 시행 1년, 무조건적인 규제보다는 시행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검토, 보완해 게임 업계와 함께 청소년 게임 중독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유기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한 청소년에게 게임이 아닌 또 다른 놀이문화를 형성해주는 기성 세대의 역할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날 방송분은 채널IT 홈페이지 (www.channelit.co.kr)에서 다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