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개발이 어느 정도 돼 있어 성공이 훤히 보이는데, 자동화 도구를 만들 여유가 없어 제품화하지 못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지난해 창업했다.” -진종욱 케이엠 그래픽스 대표.
“국가수리과학연구소에서 연구하며 네트워크와 영상기술을 접목할 분야를 찾고 있었다. 무선통신 모듈을 이용해 차량의 블랙박스 정보를 공유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올해 세계시장 진출을 기대한다.” -정상수 엠투브 대표.
“ETRI에서 임베디드 운용체계(OS)를 개발하며 13년을 보냈다. 팀원 3명에게 창업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더니 한 명도 반대하지 않아 일을 저질렀다. 조짐이 좋다.” -손동환 알티스트 대표.
전문 연구원 기술 창업에 시동이 걸렸다.
폭발적인 대규모 창업 붐은 아니어도, 정부의 창업 지원 정책에 힘입어 하나, 둘 시나브로 늘고 있다. 성공모델 하나만 나와주면 봇물 터지듯 창업 열풍이 불어 닥칠 가능성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난 3일 방문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융합기술생산연구센터에 들어선 연구원 특화 창업지원센터 3층. 이곳에선 연구원 출신 기술창업자 15명이 방 한 칸씩을 무료로 사용하며 기술 상용화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예산지원은 중소기업청의 지원을 받은 창업진흥원이 ‘연구원 특화 예비기술창업자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기업에 1억원씩 지원했다. 공간은 1년간 공짜로 입주해 쓴다. 우수 창업자 트랙에 선정되면 1년간 더 지원받을 수도 있다.
KAIST 출신 진종욱 케이엠그래픽스 대표는 “펀딩까지 해주는데, 창업을 위한 절호의 기회 같았다”고 설명했다.
정상수 엠투브 대표도 “세계 최초를 거론해도 사람들이 잘 몰라줬다. 대기업으로 가면 더 나을까 하고 이직까지 해봤지만, 의사결정 과정이 연구기관보다 더 느렸다. 열 받던 차에 좋은 펀드가 나와 창업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장훈 창업진흥원 창업멘토링센터장은 “자금은 물론이고 공간도 무료고, 초기 창업기업이 배워야할 필수과정 40시간을 교육하고 있다. 원한다면 선택과목 80시간 교육도 지원한다. 최근엔 IR를 2회나 개최해 큰 성과도 거뒀다”고 말했다.
실제 이 IR를 통해 LED 소자 제작용 신개념 고품위 템플릿으로 창업한 소프트에피(대표 황성민·전자부품연구원 출신)는 지난해 기관서 R&D자금 11억3000만원과 벤처캐피털에서 10억원의 투자유치를 받았다, 지난해 매출은 1억2500만원에 불과하지만, 도약의 발판은 이미 마련했다. 날아가는 일만 남았다는 것이 주위 평가다.
감정조절 및 인지능력 향상용 휴대형 경피두개직류자극(tDCS) 헤드세트를 개발한 와이브레인(대표 채용욱·KAIST 출신)은 정부기관에서 융자 1억원을 받고, 벤처캐피털로부터 7억원을 투자받은 케이스다.
시류를 잘 타 대박이 터진 사례도 있다. 지난 2012년 7월 창업한 뉴클리어 엔지니어링(대표 김성래·KAIST 출신)은 지난해 원자력발전소 비리로 시끄러울 때 노후화 원전 해석 및 정지 저출력 열수력 해석 기술로 한 해 매출 20억원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연구원 석·박사 창업에 중소기업청이나 창업진흥원, 출연기관 등이 공을 들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일단 창업기업 5년차 생존율이 일반 제조업은 63%인데 비해 연구원은 80%나 된다는 것. 또 하나는 창업보육 후속모델인 비즈니스 인큐베이터(BI)가 단순히 하드웨어만 있고, SW가 없다는 지적에 따라 창업공간에 자금과 교육프로그램, 3D 프린터 등 전문장비, 컨설팅 지원 등을 붙여 놨다.
중기청과 창업진흥원이 지원한 연구원 창업은 올해 서울경기 2개팀, 대전 충청 13개팀, 대구 경북 1개팀, 광주전남 3개팀 등 모두 19개팀이다. 지난해엔 22개팀이 꾸려졌다. 현재 지난해 선정한 19개 팀과 2012년 졸업은 했지만, 후속지원을 받고 있는 2개 팀을 포함해 21개 팀이 활동하고 있다.
이장훈 센터장은 “BI의 역할과 창업지원사업을 융합한 결과물이 일단은 괜찮아 보인다”며 “올해는 15~20개 기업을 지원하고 향후 상황에 따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