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나의 큰 키와 내 매력에 흠뻑 빠져 나를 좋아해’라고 남자는 생각한다. 반면에 여자는 아직 이상형을 만나지 못해 차선으로 남자를 관리하거나, 그가 항상 데이트 비용을 내기 때문이거나, 키 큰 남자를 좋아하지 않지만 얄밉게 구는 키 큰 여자친구에게 과시하고 싶어 남자를 만날 수도 있다.
사람은 생각보다 솔직하지 않다. 고객의 진짜 마음과 CEO가 생각하는 고객의 마음은 항상 엇갈려 빗나간다. 잘 나가는 회사의 CEO도 고객이 왜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두루뭉술 이런저런 이유라고 짐작한다.
고객이 제품을 사는 진짜 속마음은 여자의 마음처럼 복잡 미묘하게 감춰져 있어 웬만한 구애로는 열어 볼 수가 없다.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양파 껍질을 벗기듯 그 속에 또 다른 이유가 감춰져 있다. 끊임없이 묻고 확인하고 측정해야 한다. 쉬운 답에 만족하며 쉽게 넘어가지 않는 것이 창업가의 중요한 자질이다.
고객은 필요와 고통을 여러 모양과 경로로 호소하고, 표현하고, 말해 준다. 다만 창업가들이 고객의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기대했던 첨단기술이나 최신 트렌드가 아닌데다 흥미도 떨어져 그냥 무시할 뿐이다. 속으로는 ‘나는 그런 시시한 일이나 하려고 창업한 게 아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첨단 모바일 플랫폼을 기반으로 빅데이터 정보서비스를 하려는 것이지, 동네 찌라시를 모아 스캔하고 타이핑하는 시시한 일을 하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야’라고 생각했었다면 지금의 ‘배달의 민족’ 같은 첨단 모바일 서비스 회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결정적인 사업 기회를 발견할 기회를 놓치는 것은 바로 눈 먼 허영심과 교만 때문이다.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 내가 직접 사용하며 만족한 제품은 고객도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고객이 필요하거나,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은 내가 만족하지 못하거나, 내가 재미 없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고객과 창업가들은 해리와 셀리처럼 마주치긴 하지만 동상이몽의 꿈을 꾸고 엇박자를 내며 단지 스쳐 지나가기를 거듭하는 운명이다.
애인 같은 고객들이 외친다. “니(네)가 내 마음을 알아?”
프라이머 대표 douglas@prim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