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회사가 있었다. 코스닥에 등록돼 있고, 시가총액도 상당히 높은 회사였다. 당시 1주일 내 1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수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주주가 자신의 주식을 모두 걸고 자금을 빌리러 다니고 있었다.
어떤 금융기관도 1주일 만에 그런 대출이나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창업가는 기계 분야에서 오랫동안 노력해 회사를 코스닥까지 등록시켰다. 그 후 자금 여력이 생기자 잘 모르는 분야로 영역을 넓혀 공격적으로 새 사업을 펼쳤다. 그러나 결국 그 사업이 회사와 대주주까지 위험하게 만들었다. 결국 회사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고, 대주주는 엄청난 빚더미를 안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남의 일 같은가? 언론에 드러나지 않지만 내가 접한 사례도 상당히 많다. 규모와 내용은 다르지만 비슷한 증상과 과정을 거친다. 장기간 고생을 거쳐 사업이 성장해 이익도 나고 규모도 커져 자리를 잡으면, 창업가는 사업이 쉽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많이 떠오르고, 뭐든 잘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주변에서 칭찬하고 부추긴다. 내 손이 ‘미다스의 손’처럼 보인다. 무엇이건 내가 하면 돈이 될 것 같다. 자신이 잘 모르는 새로운 사업에 무리하게 발을 담근다.
이를 ‘첫 번째 성공 증후군’이라고 정리해보자. 필자도 이 병을 앓아서 톡톡히 고생한 경험이 있다. 대부분 성공하기 시작하는 창업가들이 거치는 홍역과 같은 질환이다. 앓는 과정에 상당수는 사망한다. 모두 쉬쉬하고 감추기 때문에 무슨 병인지도 모른 채 죽어간다.
우리나라 스타트업을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 비교해도 기술에서나 초기성장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시장의 규모가 작은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더 잘한다. 그런데 천장이 있는 것처럼 일정 수준만 되면 성장의 한계를 만난다. 첫 번째 성공 증후군을 앓는 과정에서 성장엔진이 꺼져 버리거나, 소아마비 같은 장애가 생기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스타트업은 강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 투자자가 이사회에 참여해 함께 경영하거나, 투자 계약에 이를 예방하는 조항을 명시해 둘 수 있다. 혹은 직언을 하고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내부 인적시스템이 필요하다. 멘토로는 이 증후군을 막지 못한다.
이 증후군을 거치지 않고 본업에 집중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인 벤처가 더 많이 나올 것이다.
프라이머 대표 douglas@prim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