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스타트업 멘토링]<42>용역의 늪을 조심하라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용역을 해도 된다고 했지만 용역의 끝이 좋지 않은 회사들이 참 많다. 용역의 늪, 개미지옥에 빠지기 때문이다.

용역의 과정을 통해 회사의 목적과 체질이 바뀌게 된다. 용역은 더 큰 용역의 유혹을 부른다. 직원이 적으면 단독 수주를 하지 못하거나, 병·정과 같은 약자의 위치에 선다. 재하도급을 받으면 돈은 적고 일은 많다. 실력 있는 팀은 일감이 점점 많아져 용역으로 쉽게 돈을 벌어 안주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여기가 갈림길이다. 용역 자체의 경쟁 논리에 빠진다. 더 큰 용역을 수주하기 위해 직원을 늘리고, 이미 늘어난 직원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다시 용역을 찾아다니는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간다. 사업을 시작할 때의 목적은 잊어버리고, 조직을 유지하고 먹고사는 일이 목적이 된다. 조직과 일의 목적이 이웃이나 고객에게 있지 않고, 나 혹은 조직 자체의 존립이 된 조직은 부패한다.

좋은 직원들은 회사를 떠난다. 이젠 좋은 조건의 용역을 얻을 기회도 잃고 싼 용역으로 회사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으로 전락한다.

많은 스타트업이 이 수렁에 빠져 허덕이는 것을 본다. 몇 년 지나면 상당수의 직원에 수억원의 부채까지 머리에 이고 수렁에 빠져 있다. 안타깝다.

사업 수완이 좋아 용역을 통해 상당한 돈을 벌어 수십 명의 직원을 고용한 스타트업도 가끔 있다. 이들 역시 용역의 한계를 알고 신규사업팀을 두고 자체 제품을 개발해 미래를 준비한다. 신규사업은 그것이 주력이 아니면 회사의 관성을 바꾸지 못하고 실패한다.

델컴퓨터 창업자 마이클 델이 당시 95%의 매출이 일어나는 오프라인 PC유통 사업을 접겠다는 결정을 한 후에야, 온라인 PC유통 신규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고 세계적인 회사가 되었다. 델과 같은 결단 없이 신규사업팀이 창업자 대신 회사를 용역에서 건져 살려줄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

그렇다면 거듭되는 용역의 기회를 그냥 버려야 하나? 아니다. 직원을 늘리지 않는 범위에서 말도 안 되는 높은 단가를 부르며 거절하라. 혹시 말도 안 되는 단가로도 수주가 된다면 잠시 외도해 총알을 든든히 채우고 돌아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돈맛에 취하지 말고 반드시 원대복귀하라.

프라이머 대표 douglas@prim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