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후속대책으로 추진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해양사고 예방시스템 구축 계획이 용두사미에 그쳐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해양 안전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통합 해양재난 정보체계가 없어 신속한 대응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다시 지능형 해양수산재난 정보체계 구축과 해양 내비게이션 도입 가속화 등 재난대책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비난이다.
17일 정부에 따르면, 해양수산부·안전행정부·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들이 재난 발생 시 추진했던 후속대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공간정보·모바일·빅데이터 분석 등 각종 ICT와 콘텐츠를 활용한 재난 예방 대책을 마련했지만 적용된 사례는 매우 적다.
정부는 지난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이후 공간정보를 활용, 재난 예방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해수면과 해양 속 공간정보를 활용, 해양 재난 예방 대책도 수립했다. 2013년 초에는 당시 국토해양부, 기상청, 통계청, 국립해양조사원, 국토지리정보원 등이 재난·재해 피해 최소화를 위한 부처 간 ‘공간정보관리기관협의회’를 구성했다. 협의회는 공간정보 품질 확보 외에 재해 예방을 위한 논의는 진행하지 못했다.
지난 2001년부터 수백억원을 들여 해양공간정보시스템을 구축했지만 해양재해 예방에 활용하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재난이 발생하면 후속 대책으로 각종 재난 예방시스템 구축 등을 마련하지만 시간이 지나 여론이 조용해지면 사업 우선순위에서 밀려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전했다. 상당수 재난예방시스템은 계획만 세웠을 뿐 구축되지 못했다.
해양수산부의 위기대응 전달체계도 부족하다. 해양수산부는 해양 재난 관련 선박·어업·수산·해양·환경 등 각종 정보시스템이 개별적으로 구축돼 연동이 이뤄지지 않는다. 종합적 해양재난 대응이 어려운 이유다. ‘세월호’ 침몰 사건에서도 선박의 전체 승객이 정확히 집계되지 못한 것도 이러한 원인 때문이다.
소방방재청의 119 체계와 해양경찰청의 신고시스템이 연동되지 못한 것도 사고 대응을 더디게 한 원인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시 학부모가 신속하게 119에 신고했으나 실제 구조작업은 한 시간 후에나 시작됐다.
재난대책 관계자는 “119시스템과 해경 시스템이 연동돼 동시 신고접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재난 대응이 필요한 정보시스템이 개별적으로 구축돼 연동되지 않은 것도 사고 피해를 확대시킨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통합해양재난 정보체계를 갖추기로 했다. 해양사고에 선제 대응하고 예방·대비·대응·복구 과정을 신속 지원할 수 있는 ‘지능형 해양수산재난정보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정보화전략수립(ISP)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실제 가동 시점은 2016년이다.
바다의 길안내 시스템인 ‘e내비게이션’ 구축 사업도 가속화한다. 해수부가 출범과 함께 2200억원을 투입, ‘e내비게이션’ 구축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제야 기술성 심사를 통과해 예비타당성 검토에 들어가는 수준이다. e내비게이션이 도입되면 조속·조류·기상정보·해상교통상황·바닷속 환경 등 운항 정보를 실시간으로 선박에 전송해 어떤 돌발 상황에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재난 예방과 신속한 대응을 위해 수립한 대책만이라도 제대로 이행했다면 이번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