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유통 시장이 신음하고 있다. 일부 석유수입사는 탈세에서 기인한 가격경쟁력으로 석유시장을 교란하고 전체 주유소 10% 미만인 알뜰주유소는 정부의 각종 지원 혜택을 무기로 주유소시장을 흔들고 있다. 기존 석유 대리점과 주유소에는 혼란요인이 겹치면서 ‘정직하게 세금 내고 사업하면 망한다’는 흉흉한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다. 참다못한 석유대리점과 주유소 사업자가 연이어 거리로 나섰다. 정부의 과도한 석유시장 개입 철회를 요구하는 대규모 궐기대회와 결의대회를 잇달아 개최하며 ‘살려 달라’고 아우성 치고 있다. 석유 시장이 혼돈에 빠진 이유와 해결책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석유 수입사 가격경쟁력 원천은 탈세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석유수입사 지엘스마트오일은 약 26억4000만원 상당 주행세를 체납한 상태로 정부에 석유수출입업 등록 취소 신청을 한 뒤 모든 관계자가 잠적했다. 울산 소재 수입사 에코패트로오일은 지난해 12월 설립된 후 영업 중이나, 그간 총 26억3000만원 상당의 주행세와 1억9000만원 상당의 석유수입부과금을 내지 않은 상태다. 한국석유공사는 이 회사가 수입한 유류 약 4000㎘가 저장된 저유소를 압류했고, 산업부는 업체 등록을 취소했다.
최근 일부 석유 수입업자가 지방세인 자동차세(옛 주행세)를 통관 후 15일 내에 납부하도록 되어 있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 석유를 수입한 후 단기간에 덤핑 가격으로 유통시킨 뒤 고의적으로 자동차세를 체납하고 이를 숨기기 위해 재산 도피와 폐업하면서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고 있다. 주행분 자동차세는 정유사와 석유 수입 업체가 지방자치단체에 내는 세금으로 경유는 ℓ당 97.5원, 휘발유는 137.54원이다.
일부 불법 석유수입사는 서류상 사장을 내세워 새로운 수입사를 설립해 악의적으로 세금을 체납했음에도 체납세금 회수를 위한 제품 압류가 어려운 상황이다. 체납과 탈세는 올해도 지속되고 있어 정상적으로 세금을 납부하고 영업활동을 하는 석유유통업체의 경영 여건은 상대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석유수출입업자 우대 정책 부작용
불법 석유 수입사가 활개를 칠 수 있었던 배경에 정부가 석유시장 경쟁을 강조하며 석유전자상거래를 통해 석유수입사를 지원하고 석유사업법 상 등록요건을 완화하는 등 수입사를 지원한 데 있다. 정부는 석유사업법상 수출입업자 석유비축 의무를 삭제하고, 전자상거래 운영 초기 할당관세, 부과금, 바이오디젤 혼합의무 면제 등 ℓ당 60원가량 혜택을 부여했다.
하지만 수입업체가 지방주행세, 수입부과금 등 세금을 수십억원씩 내지 않고 영업행위를 하다가 적발되면서 석유수입사 활성화로 저가 석유제품이 통용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석유유통업계는 시장 상황이나 허점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을 파악하지 못한 정부가 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특히 수출입업자가 부여받은 각종 혜택에 비해 실제 주유소 소비자 가격 인하에 끼친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실제 검증하기도 어렵고, 정부의 모니터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 수입사는 세금 탈루 후 잠적하는 등 추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어, 국가경제에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석유유통협회는 “2002년 이후 소멸시효가 경과해 징수가 불가한 체납액은 지난해 말까지 7개 업체 638억원에 이르고, 최근 3년간(2011∼2013년) 자동차세 체납액은 74억7000만원”이라고 밝혔다.
◇알뜰주유소 관련 사업자만 혜택, 실효성 낮아
석유유통업계는 정부의 알뜰주유소 정책이 세금 감면과 각종 파격적 특혜에도 가격인하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전국 정유사 폴주유소와 자영 알뜰주유소 판매가격 차이가 ℓ당 약 40원대 수준으로 당초목표 100원 대비 크게 낮은 상황이다. 업계는 이 정책이 알뜰주유소 주변 일부 소비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반면, 석유대리점과 주유소 등 다수 석유사업자의 경영난을 가중시켰다고 밝혔다.
국내 주유소 거리 제한 철폐 이후 주유소 수가 꾸준히 증가해 1만2700개소로 포화 상태다. 이로 인한 경쟁심화로 영업이익률이 악화되고 폐업주유소가 급증하고 있다. 세금을 투입해 알뜰주유소를 만들지 않아도 경쟁이 치열한데, 정상 사업자의 숨통을 죄는 정부의 불공정한 석유유통시장 정책으로 심각한 경영난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알뜰주유소 공급자는 석유공사가 시행하는 경쟁입찰 방식을 통해 결정되는데, 그동안 삼성토탈은 합당한 절차 없이 수의계약으로 알뜰주유소 공급권을 확보한 것도 형평성 문제를 야기했다. 정부가 유가 안정화를 위해 세금으로 알뜰주유소를 지원하고 삼성토탈이 정유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준 것은 기존 석유사업자와의 형평성을 저해하고, 자율적인 석유유통시장 상거래질서를 혼란시켰다는 지적이다.
◇인위적 개입이 문제,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야
“국내에 쉘, BP 등 글로벌 정유사 상표 주유소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마진이 적어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정유사 한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 석유제품 공급 경쟁력은 이미 글로벌 회사보다 우위에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외국 정유사가 주유소 사업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유사가 생산하는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60% 이상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충분하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정유사가 4등분하고 있는 국내 석유시장을 정부가 더 경쟁을 촉진하겠다고 정책을 만든 석유수입사 우대, 알뜰주유소 지원 등은 시작부터 무리가 있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교수는 “석유제품전자상거래, 알뜰주유소 등 정책을 정부가 억지로 세금을 들여 유지하고 있다”며 “혼란에 빠진 석유시장 유통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정부가 정책을 철회하고 시장 개입을 그만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담합을 막거나, 공정한 시장질서 유지·관리를 담당하는 것 정도가 역할일 뿐, 시장가격을 좌지우지하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잘못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는 “망가진 석유시장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부가 경쟁 활성화를 명목으로 특정 사업자에게만 세금을 지원해온 정책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 상무는 “석유시장은 교각살우(橋脚殺牛)의 위기”라며 “정부가 석유정책을 바로잡는 시간이 늦어질수록 세금낭비와 부작용은 커지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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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오피넷]
[자료:한국주유소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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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