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동글형 OTT 장치인 구글 크롬캐스트가 한국 시장에 본격 상륙한다. 구글은 CJ헬로비전, SK플래닛 등 국내 메이저 N스크린 서비스 업체와 손잡고 크롬캐스트를 전격 공급할 방침이어서 유료 방송시장에 파장이 예상된다.
13일 방송업계에 따르면 구글코리아는 CJ헬로비전 ‘티빙’, SK플래닛 ‘호핀’ 등 국내 N스크린 서비스 전문업체와 방송 콘텐츠 공급 계약을 맺고 14일 크롬캐스트를 정식으로 국내 시장에 출시한다. 국내 N스크린 전문업체와 협력체계를 구축하면서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고 아직 이렇다 할 경쟁 상대가 없는 국내 OTT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SK플래닛 관계자는 “TV프로그램, 영화 등 주문형비디오(VoD)를 우선 크롬캐스트에 제공하며, 향후 콘텐츠 제공업체(CP)와 진행하는 협의에 따라 콘텐츠 종류가 다양할 것”이라며 “구글코리아 결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지만 크롬캐스트 정식 국내 출시일은 14일로 잠정 결정됐다”고 말했다.
CJ헬로비전 관계자는 “티빙 콘텐츠를 크롬캐스트에 공급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제품 출시 전이기 때문에 실시간 방송, VoD 등 상세 콘텐츠 종류는 아직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크롬캐스트는 구글이 지난해 7월 출시한 미디어 플레이어 장치다. 국내에 출시되는 제품은 인터넷 프로토콜(IP) 방식으로 티빙·호핀의 방송 콘텐츠를 TV 수상기에 전송한다. USB 메모리와 비슷한 7.2㎝ 크기로 설계해 휴대성을 높였으며, TV HDMI 단자에 꼽아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35달러(약 3만6000원)에 불과한 저렴한 판매가격도 강점이다. 크롬캐스트가 미국시장에서 수백만개에 달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글로벌 TV시장을 뒤흔들 차세대 미디어 기기로 평가 받았던 이유다. 국내 시장에서도 미국과 비슷한 4만~5만원대 가격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이 크롬캐스트를 출시하면서 앞으로 국내 OTT 시장에서 치열한 시장점유율 확보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동글형 OTT가 방송업계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으면서 유료방송사업자와 셋톱박스 전문업체가 속속 시장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무료 N스크린 서비스 에브리온TV는 지난 2월 한국판 크롬캐스트 ‘에브리온TV 캐스트’를 선보였다. TV에 꽂아 약 250개 채널을 시청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크롬캐스트와 달리 스마트폰 화면을 TV 화면에 그대로 옮길 수 있는 ‘미러캐스트’ 기능을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 CJ헬로비전은 티빙을 탑재한 동글형 OTT를 개발하고 있다. 다음TV는 지상파 N스크린 서비스 ‘푹TV’와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이르면 올 하반기 신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뉴스해설
차세대 미디어로 각광 받으며 미국 현지에서 돌풍을 일으킨 구글 크롬캐스트가 국내 시장에 출시되면서 국내 방송 업계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가격 경쟁력은 물론이고 대형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주문형비디오(VoD) N스크린 전문업체와 협력관계를 구축하면서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한 크롬캐스트에 국내 업체가 고전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HCN 계열 에브리온TV가 지난 2월 선보인 ‘에브리온TV 캐스트’는 예상보다 부진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에브리온TV에 따르면 지난 4월 한 달간 에브리온TV 캐스트는 일반 소비자 시장(B2C)과 기업 시장(B2B)에서 각각 180대, 830대 판매량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브리온TV가 목표 판매량을 10만대로 설정한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지상파 채널 등 콘텐츠 경쟁력을 갖춘 채널이 없는 것과 유통 채널을 현대H몰로 한정한 것이 판매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반면에 크롬캐스트는 CJ헬로비전·SK플래닛을 콘텐츠 공급 협력사로 삼아 시장 경쟁력을 확보했다. 8만~9만원에 판매되는 에브리온TV 캐스트보다 가격도 저렴하다. 안드로이드 운용체계(OS)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구글 플레이’를 판매 채널로 활용할 수 있다. 한정된 인프라를 기반으로 시장 경쟁을 벌여야 하는 국내 사업자가 구글에 뒤쳐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된다.
방송업계 일각에서는 크롬캐스트 출시를 계기로 OTT 시장이 활성화되면 향후 유료방송 시장에 ‘코드 커팅(Cord Cutting·가입탈퇴)’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모바일 방송 콘텐츠와 VoD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기존 유료방송서비스 가입자가 대거 OTT 서비스로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은 미국과 달리 유료방송 요금이 저렴하기 때문에 OTT 서비스가 기존 유료방송 서비스를 대체하는 역할보다는 ‘보완재’에 머무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1만원 수준에 불과한 요금을 아끼기 위해 당장 OTT 서비스로 이동하는 가입자는 적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OTT 시장은 이제 막 개화했기 때문에 크롬캐스트가 국내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을지 예상하기 어렵다”며 “복잡한 역학관계로 구성된 국내 방송 산업을 감안하면 OTT가 기존 유료방송 서비스를 전면적으로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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