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내년부터 시행 예정이던 ‘저탄소차협력금제도’가 심판대에 올랐다. 세부 시행령을 만들기 위한 부처 간 협의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부처별 연구 기관이 조정안을 놓고 갑론을박을 계속했다. ‘산업 보호’와 ‘환경 보호’라는 명제가 충돌하면서 국회를 통과한 법이 시행 6개월을 앞두고도 방향을 잡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9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산업연구원은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저탄소차협력금제도 연구발표’ 공동 공청회를 진행했다.
이날 공청회에도 3개 연구기관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조세연구원은 내년부터 2020년까지 제도를 운영할 경우, 이산화탄소 누적 감축량은 54만8000만톤으로 정부 감축 목표의 35% 수준에 불과해 제도 운영 방식의 조정과 추가 정책 수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0년 보조금 규모가 5100억원에 달해 재정 적자 규모가 지속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친환경차 세제 혜택 및 보조금 유지 및 부담금 부과 유예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환경부는 2020년까지 160만톤의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하고 중장기적으로 자동차업계의 생산액과 고용도 증가하는 만큼 예정대로 내년부터 시행해야 한다고 입장이다. 전기차, 하이브리드 차 등 국내 기술력 부족과 해외부품 의존도 판매증가효과 등에 대해서도 상반된 전망을 했다. 산업연구원은 전기차 보급은 5만7000대로 제시했지만 환경연구원은 20만대로 제시했다.
제도 도입으로 인한 효과와 국가 재정 및 산업 영향을 고려할 때 당장 내년부터 기존 계획대로 시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다. 또 업계가 우려하는 국내 자동차 산업 경쟁력 약화 및 수입차 수혜 주장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이에 대해 환경연구원은 산업계 부담을 감안해 제도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구간과 요율을 완화한 설계안을 우선 적용하고, 주기적으로 이를 재설계하는 방안을 주장했다. 조세연은 산업연구원과 환경연구원의 의견 차를 중재해 시행방안을 발표한다고 했지만, 환경연구원은 발표된 시행방안이 산업계 의견안일 뿐 동의하거나 합의한 바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환경연구원 관계자는 “공청회는 각 연구기관이 각자 입장을 발표하면서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저탄소차 협력금제도 논란이 결국 막판까지 왔다. 3개 연구 기관이 합의안 없이 공청회를 한다고 한 순간부터 파행이 예상됐다. 조세연구원이 제도 유예까지 언급한 상황에서 관심은 저탄소협력금제도가 과연 내년 1월 온전히 시행될 수 있느냐로 모아지고 있다.
벌써부터 산업계 일각에서는 제도의 철회설이 돌고 있다. 국회를 통과한 법이 시행 시기를 두 차례나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대기환경법 76조의 ‘할 수 있다’는 문구를 근거로 안 해도 된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9일 공청회 역시 서로 합의점을 도출할 의지가 있는 지에 대해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각 연구기관 담당자들이 2매 짜리 자료로 5분간 설명하는 공청회로는 자세한 설명이 불가능했다. 토론자들도 찬반 입장의 동수(3명)로 구성돼 그동안 해오던 소모적인 논쟁을 다시 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제 마지막 절차는 국무회의로 넘어갈 판이다. 각 부처 장관들이 직접 합의점을 도출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워낙 입장 차가 커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난감하기는 환경부와 산업부 둘 다 마찬가지다. 환경부는 온실가스 감축과 차량 구매문화 전환 차원에서 제도를 시행하려 하겠지만 규제개선의 국정기조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부는 자동차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 제도의 철회나 유예를 생각하지만 세월호 등 최근 국민 안전과 건강에 대한 사회적 눈총이 뜨거운 상황에서 자동차 업계의 의견을 대변하기도 부담스럽다.
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m,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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