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와 세종 청사를 잇는 영상회의시스템이 개통 1년이 가깝도록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정치의 비효율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많은 돈을 들여 큼지막한 모니터를 달고 영상회의 솔루션도 최신 제품으로 설치했지만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지난해 8월 개통 당시 여야 의원과 국회 사무처 고위직까지 한 자리에 모여 국회와 행정부 간에 획기적인 소통 도구가 마련됐다고 자화자찬했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아까운 혈세가 낭비됐다. 시설이 훌륭하다고 국회가 자화자찬한 하드웨어 도입 비용만 40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매월 300만원 넘게 전용선 요금도 냈다. 전용선 값은 끊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치러야 한다. 효율을 높인다고 마련한 영상회의시스템이 세금을 잡아먹는 애물단지 꼴이 됐다.
세금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행정 공백이다. 영상회의로 처리하면 한 두 시간에 끝날 일을 담당 공무원이 여의도까지 왕복해야 하니 반나절로도 모자란다. 정책 마련에 치중해야 할 행정 관료가 기차와 고속버스 안에서 피곤에 지쳐 졸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손해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관심을 두지 않지만 길에 뿌리는 관료의 시간은 머지않아 행정 누수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책임은 국회가 크다. 국회에 영상회의시스템을 쓰자고 말하지 못한 관료도 면죄부를 받을 수 없지만 ‘갑’에게 먼저 제안하기는 힘든 일이다. 결국 국회의원이 변해야 풀릴 문제다. ‘머리 숙이고 직접 와서 보고’하는 관행을 깨야 한다. 국민의 대표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권위적으로 군다고 권위가 생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권위의식에 찌들었다고 비난을 받는다.
우리 사회 많은 비효율성은 국회의 고압적 자세에서 비롯한다. 선거철에만 국민에게 머리가 닿도록 조아리지 말고 누구에게나 동등한 입장과 열린 자세를 보여야 한다. 영상회의시스템 문제는 빙산의 일각이다. 국회는 지금이라도 혈세 낭비와 행정 공백을 낳는 고압적 자세를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