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력발전소는 혐오 시설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 덕분에 발전소는 생활공간과 분리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제주도 남제주군 화순항 인근에 있는 한국남부발전 남제주화력은 예외다. 발전소로 들어가는 길에 농가가 들어섰다. 발전소에 사용하는 연료 절반을 벙커씨유에서 바이오 중유로 바꾸기도 했지만 지역주민과 공생 모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화력발전소 온배수열 활용 사업이다. 남제주화력은 2010년 4월부터 행복나눔영농조합법인에 무상으로 온배수를 공급 중이다. 전기나 기름 대신 온배수로 1만4876㎡(4500평)의 애플망고와 감귤 농장 난방을 하는 것이다. 온배수 열손실을 최소화하고자 아예 발전소 정문 앞에 자리 잡았다.
빨갛게 익은 애플망고를 상상하며 비닐하우스에 들어섰지만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애플망고 잎만 무성하다. 애플망고가 한창 나올 시기지만 이미 수확이 끝났다. 필리핀에서도 5월이나 돼야 수확하는 애플망고를 여기서는 2월이면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난방비 부담이 없으니 따뜻한 환경에서 자라 맛도 기가 막히다. 수확 전에 판매 완료다. 특히 애플망고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자택에서도 구입할 만큼 인기다.
온배수를 활용하면서 농가 수익도 크게 올랐다. 일반적으로 감귤농장은 3300㎡(1000평) 기준 연 매출이 1억원이다. 이중 5500만원이 연료비로 들어가고 인건비 1000만원, 비료 1000만원을 제외하면 2500만원가량 남는다. 온배수를 활용하면 히트펌프나 축열탱크 등 기기 설치비 감가상각을 고려해도 연료비는 1000만원이면 충분하다. 면세 경유를 이용한 보일러에 비해 6분의 1 수준이다. 연간 수익이 세 배 가까이 오르는 셈이다.
영농조합에서 활용하는 온배수는 전체 배출량 1억7000만톤의 0.15%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양으로도 연간 연료비를 3억7000만원가량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영농조합은 이와 함께 과수별 관리를 위해 분재배 방식을 도입했다. 대형 화분에 애플망고 나무가 하나씩 꽂았다. 최적의 맛을 내고자 빅데이터 도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마다 하나의 관으로 물과 비료, 영양제를 주입하면서 데이터를 수집 중이다. 이를 토대로 성장속도와 맛을 비교해 최적 값을 찾아낸다는 구상이다.
2012년부터는 온배수를 이용한 양식사업도 추진 중이다. 돌돔치어 2000마리를 온배수로 키워보니 성장속도가 갑절이나 빨랐다고 조합 측은 설명했다. 남제주화력과 영농조합은 지난해 9월 온배수와 저온해수를 시간당 100㎥ 지원하는 것과 발전소 내 배관포설 부지를 무상 제공한다는 내용의 ‘온배수 이용 협약’을 맺었다. 수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발전소 취수지점에 배관을 연결해 수온이 높은 여름철 양식장 돌돔 폐사 방지대책도 마련했다.
앞으로 약 20만미의 돌돔치어 양식을 추진한다면 연간 3억원의 지역주민 소득 증대는 물론이고 온배수 활용에 따른 난방비 절감과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은 덤이다.
강태욱 행복나눔조합법인 사무장은 “남제주화력에서는 연간 1억7000만톤의 해수를 7도나 끌어올린 에너지가 외부로 버려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번 사업은 자칫 지역주민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온배수를 이용해 화력발전소와 지역주민이 공생할 수 있는 모범 사례”라고 말했다.
제주=
유창선기자 yuda@etnews.com
◇화력발전소 온배수열 활용사업
화력발전소 온배수열 활용사업은 온배수를 영농단지 난방열원으로 공급하는 게 핵심이다. 면세유나 전기 대신 영농단지 난방에 필요한 열을 버려지는 온배수로 활용하면서 난방비를 아끼는 방식이다. 난방비 부담이 큰 겨울에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식물성장을 촉진하고 화훼, 열대과일 등 고부가 작물 생산이 가능하다.
화력발전소 온배수열 활용사업은 연간 2억4000만G㎈의 열이 발생하지만 실제 활용율은 0.48%에 불과하다는 데서 착안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농림축산식품부가 손을 잡고 온배수 37만톤을 농업부문에 활용하기로 했다. 화력발전소 참여를 늘리려 산업부는 발전소 온배수열을 신재생에너지원으로 인정하고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발급한다. 농림부에서는 영농법인을 에너지이용효율화사업 지원대상에 포함시켰다. 농가 에너지 부담을 절감하고 신규소득 창출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의견 일치를 본 것이다.
산업부와 농림부는 농가를 중심으로 영농법인(SPC)을 설립하고, 발전소 인근 유휴부지에 원예시설 등을 포함한 대규모 복합영농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