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유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수출과 내수 여건이 악화되는 가운데 정유사의 실적악화가 추세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석유제품 수출은 셰일혁명에 따른 미국 정유산업 경쟁력 강화와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적 정제능력 확장, 세계 석유제품 수요 둔화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부진한 양상이 뚜렷해졌다.
2011년과 2012년에 각각 품목별 수출 금액 1위를 차지했던 석유제품은 지난해에는 수출이 전년보다 5.9% 감소한 527억8700만달러를 기록했고 순위도 2위로 밀려났다. 올해 들어 8월까지 수출은 작년 동기 대비 0.5% 늘어난 354억9400만달러를 기록했으나, 수출증가율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증가율 2.5%를 밑돌았다. 정유사들은 네덜란드와 싱가포르 등으로 우회수출 확대 등 수출증대 노력을 다각도로 벌이고 있으나 수출전선은 험난해지고 있다.
내수는 경기부진에 따라 수요둔화가 뚜렷하다. 특히 정부가 2011년 이후 추진했던 알뜰주유소, 혼합판매, 전자상거래 등 각종 시책들이 내수 부진에 더해 정유업계 전반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수출과 내수 부진은 경영실적 악화로 직결되고 있다. 국내 정유 4사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을 보면 2012년에 정유부문이 -0.3%로 2010년과 2011년의 2.2%에서 급락했다. 지난해에는 -0.01%로 마이너스 폭이 다소 줄긴 했으나 영업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올 1분기 영업이익률은 0.6~1.6%로 나타났으나 상장사 제조업종 평균 영업이익률 5~8%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석유화학, 윤활유 등 그동안 정유부문의 실적악화를 보완해 준 비정유부문 실적마저 최근 악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 하향 안정과 글로벌 석유제품 수요 둔화 속에 단순 정제마진은 마이너스가 이어지고 있고, 크래킹마진을 포함한 복합정제마진은 지난해 배럴당 4달러 중반에서 올 6월에는 2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지구적 차원의 공통과제인 온난화 방지와 이를 위한 온실가스 배출 규제도 정유산업에는 도전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국가 단위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될 예정이어서 이로 인한 정유업계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 실적 악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무디스나 S&P와 같은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우리나라 정유사들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해 보면 우리 정유 산업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업계나 정부는 어떤 대응에 나서야 할까. 정유사들은 강도 높은 자구노력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며, 특히 시장다변화와 사업다각화 등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배양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도 더 이상 무리한 시장개입과 그로 인해 야기된 정유사의 수익악화 때문에 정유사가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여력을 상실하도록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외환위기 당시 정부의 ‘빅딜’ 정책에 의해 구축된 정유 4사 체제를 과점체제라고 매도하며 일방적으로 규제를 가해서는 곤란하다. 지금은 국제 석유산업의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한국 업체들이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다양한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정유산업이 국제경쟁 대열에서 완전히 밀리고 말 것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kuohn@s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