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특허노믹스 시대, 은행권 특허경쟁력 ‘적색 경고등’

창조경제시대, 지식재산(IP)이 기업 경쟁력의 가늠자로 떠올랐다. 기업이 무형의 자산을 통해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고 산업계에 호흡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은행이다.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특허에 대한 철저한 심사능력은 물론이고 관리 체계, 산업적 측면에서 활용 전문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슈분석] 특허노믹스 시대, 은행권 특허경쟁력 ‘적색 경고등’

수조원의 자금을 운용하는 은행들의 자체 특허경쟁력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전자신문은 특허정보 검색 및 분석 전문기업 ‘윕스’와 함께 국내 최초로 은행권 특허 출원 현황을 분석해 보았다. 분석 대상 시기는 지난 2005년부터 2014년 9월까지 10년간이다.

그런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10년 새 은행권 특허출원 수는 10분의 1로 급감했다. 정량적 비교만으로 특허경쟁력을 판단할 순 없지만, 급변하는 스마트금융 환경에서 특허에 대한 투자와 대응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권이 특허를 가장 많이 출원한 2007년(352건)과 10월 중순이 되도록 2건 밖에 출원하지 못한 올해(2014년)는 비교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제 머리 못 깎는’ 은행권

신한은행과 IBK기업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국민은행, 신한은행, KDB산업은행, 외환은행, NH농협은행, 한국씨티은행 등 국내 주요 은행들의 지난 10년간(2005년~2014년) 특허출원 총량은 2007건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동안 특허를 가장 많이 출원한 곳은 신한은행(1071건)이었다. 이어 기업은행(285건), 우리은행(196건), 하나은행(159건), 국민은행(50건), 산업은행(19건), 외환은행(14건), 농협은행(12건), 한국씨티은행(4건) 순으로 나타났다. 부산은행, 전북은행, 경남은행, 대구은행 등 지역은행도 각각 1~3건 정도 특허를 출원했다.

은행권 특허출원은 2007년~2009년에 집중됐다. 반면 최근 3~4년간 출원량은 극미하다.

최다 출원한 신한은행조차 2007년부터 2010년까지 1003건을 집중 출원한 후, 최근 3~4년간 특허경쟁력 확보를 위한 활동이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스마트금융3.0 시대, 특허경쟁력이 생존 관건

은행권 특허는 주로 국제특허분류(IPC) 상 금융, 관리, 예측 등에 특히 적합한 데이터처리 시스템 또는 방법인 G06Q클래스(1667건)에 집중 출원됐다. 보통 금융상품에 대한 비즈니스모델(BM)특허와 전자결제와 같은 지불체계 및 전자상거래 관련 BM특허 등이 G06Q클래스로 분류된다.

‘영업 방법 발명’으로 불리는 BM특허는 컴퓨터,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ICT)과 영업방법 등 사업 아이디어를 접목해 출원하는 특허를 말한다. 2012년 특허출원을 기준으로 BM특허의 8.5%를 금융서비스가 차지했다.

모바일 뱅킹 등 스마트금융 바람이 확산되면서 금융서비스 관련 특허는 단순히 은행권 내부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IT 및 통신 기업과의 충돌 혹은 종속 우려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애플이 선보인 ‘애플페이’와 알리바바의 ‘알리페이’ 등 금융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는 ICT기업들은 이미 관련 특허를 해외에서 선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허괴물’ 회피할 해법 필요

지난해 5월부터 8월 사이 미국의 ‘특허괴물’(NPE·특허관리전문회사) 인텔렉추얼벤처스(IV)는 총 11건의 특허권을 기반으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A), JP모건체이스, 캐피털원 등 미국 내 13개 금융기관 대상 총 15건의 특허소송을 제기했다. IT기업을 주로 공격하던 NPE가 금융시장으로 눈을 돌렸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류제택 한국특허정보원 박사는 “국내 특허환경은 소송비용 대비 적은 손해배상금 등 소송 가성비가 낮아 당장 인텔렉추얼벤처스와 같은 글로벌 NPE의 분쟁 특허가 진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도 “국내에서도 지식재산의 재무적 가치를 점차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만큼 특허환경의 개선과 동시에 분쟁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해외 은행이나 NPE는 자사의 이름을 숨기고 관계사나 계열사, 페이퍼컴퍼니 등 다른 이름으로 국내에 유사특허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어 관련 기술에 대한 모니터링 및 대비도 필요하다.

반면 국내 은행은 특허 대응에 있어 자유롭게 금융상품을 복제함으로써 시장규모를 키우는 것이 더 낫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금융산업은 높은 규제와 감독을 받기 때문에 창의적 금융기법을 도입하기 어려운데다, 신 금융기법과 상품 도입에 있어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은행 스스로가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특허확보까지 신경 쓰기가 힘들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배타적 사용권’ 등을 인정해주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울러 국내 은행이 자체 특허와 우회 특허를 통해서라도 해외 특허괴물의 공격에 맞설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