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도시에서 장사를 배우다
지난 몇년간 국내 대기업 패션 업체들이 ‘패스트패션’ 브랜드를 앞다퉈 선보였다. 해외 ‘ZARA’, ‘H&M’ 등 복합 의류매장이 전세계에서 성공을 거두자 이를 본따 저렴하면서 유행에 맞는 옷을 팔겠다고 나선 것이다.
많은 사업들이 그렇다. 해외에서 성공한 사업이라면 국내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노하우를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기발한 아이디어인 것 같지만 어딘가에서 같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아직 내가 염두에 둔 지역에는 도입되지 않았다면 소비자들이 충분히 참신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장사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주목 받고,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또 그들이 단골이 돼 가게가 장수하길 바란다. 하지만 최근 서울 사람들이 몰리는 신사동 가로수길, 홍익대 주변, 이태원 등에 가보면 비슷비슷한 식당들과 가게들 일색이다. 이 곳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전세계 장사잘하는 사람들은 어떤 방식을 사용할까.
김영호 유통컨설팅회사 김앤커머스 대표가 직접 뉴욕·런던·도쿄·상하이·LA 등 세계적 관광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장사 노하우, 유통방식, 소비패턴 등을 연구해 책을 냈다. 장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들춰볼만한 트렌드 가이드북이다.
어떤 메뉴를 준비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미국인의 생활 패턴을 연구하라는 팁을 준다. 바쁜 도시 사람들에게는 고급스런 간편식이 제격이다. 작가는 국내에 들어온 대부분의 유통업태는 미국에서 시작돼 일본을 거쳐 흘러들어왔다고 한다. 최근 서울 시내에도 커피, 샌드위치, 일본식라면 등을 파는 ‘푸드트럭’도 뉴욕·LA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푸드트럭은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흔하게 보는 노점상과는 이미지가 다르다. 미국 푸드트럭들은 바닷가재 등 고급 재료와 신선한 식자재를 사용해 편견을 없애고 ‘간편식’이라는 인상을 받도록 했다. 창업비용은 식당의 4분의 1 수준이지만 실패하면 재료를 메뉴와 브랜드를 바꿔 다시 창업할 수 있어 뉴욕에만 3000만대가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계 브랜드 ‘레드오망고’ 역시 요구르트와 신선한 생과일을 접목한 고급 이미지로 돌풍을 일으켰다.
싱글족을 위한 아이템은 이제 식상한 소재이지만 선진국을 중심으로 중노년 싱글족이 늘어나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한다. 일본이 좋은 예다. 포화 시장으로 인식되던 편의점이 고령자 맞춤형 배달, 신선식품 서비스를 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벼룩 시장, 전통시장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조언도 했다. 런던 포터벨로 시장, 캠던 시장 등 전통시장은 주말마다 전세계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들의 강점은 백화점이나 쇼핑몰과 차별화되는 공연, 다채로운 물건들이다. 소비자가 모이면서 전통 시장들의 외연은 물리적으로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작가는 국내 전통시장 주변 노점을 규제만 할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시장 주변에 결집돼 다양한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언론 환경도 비교했다. 인터라켄을 방문한 작가는 독일 TV나 신문이 매주 각 슈퍼마켓 체인 비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발견했다. “소비자 공익 차원에서 어떤 매장에서, 어떤 상품을 가장 저렴하게 판매하는지 알려준다”며 “먹거리 음식 위주로 홍보성 프로그램을 내보내기보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제품 정보를 제공해줬으면 한다”고 적었다.
장사를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도 전세계 ‘핫 시티’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여행책을 읽듯이 가볍게 손에 들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김영호 지음. 부키 펴냄. 1만5800원.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