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미 오래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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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틸라의 전사들은 토산(土山)을 쌓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높이의 토산이었다. 아틸라는 멀리서 보고있었다. 에르낙이 다가왔다.
“준비는 다 되었나?”
“네.”
그때 오에스테스, 콘스탄티우스, 에데코 등이 훈의 전사들을 향해 외쳤다.
“그만 멈추라.”
그러자 전사들은 작업을 멈추었다. 어마어마한 높이의 토산이 완성되었다. 인공산이었다.
“울딘에게 드릴 제사를 시작하라.”
그러자 무녀복을 입을 어린 신녀들이 나타나 제단을 준비했다. 횃불을 가열차게 틀어올렸다. 아틸라가 먼저 명적(鳴鏑)을 쏘았다. 우는 화살이었다. 효시(嚆矢)였다. 훈의 전사들은 모두 아틸라가 화살을 쏜 방향으로 화살을 쏘았다.
“이제 시작됐다.”
아틸라는 무녀와 함께 제단으로 올라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이미 네 다리를 묶어놓은 건강한 말을 향해 걸어갔다. 전장에서 나고 자란 놈이었다. 아틸라는 칼을 들어 말의 심장을 갈랐다. 말의 심장에서 피가 솟구쳤다. 순간 훈의 전사들이 특유의 희한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마치 피리소리 같기도 했고 짐승의 소리같기도 했다. 또 하늘이 우는 소리같기도 했다. 둥둥 둥둥 말에 타고 있는 전사들이 말발굽으로 땅을 뒤흔들었다. 무녀가 희번득하게 눈을 까뒤집고 알아들을 수 없는 수상한 말의 유(有)와 무(無)를 쏟아놓았다. 아틸라는 자신의 셋째 아들 에르낙과 함께 이 광경을 목도하고 있었다. 무녀의 분명한 방식의 방언이 멈추더니 별안간 쓰러졌다. 아틸라가 달려갔다. 무녀의 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틸라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전사들을 다스리십시오.”
백발의 에르낙이 곁으로 와서 조용히 말했다. 아틸라는 침착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한 덩어리가 되어 살육의 유혹속에 빠져있는 훈의 전사들에게 소리쳤다.
“이미 로마는 우리 것이었다. 이제 시작되었다!”
훈의 전사들은 불량하게 발광하기 시작했다. 거친 짐승들의 대단한 포효였다.
“나는 모든 부족이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대(大) 제국을 건설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다. 이것이 아틸라가 원하는 위대한 황금의 제국이다.”
아틸라는 간직하고 있던 황금보검을 높이높이 치켜들었다. 갑자기 하늘이 갈라지며 우루루 번개가 치고 폭우가 쾅쾅 쏟아졌다. 훈의 전사들은 폭우 속을 난장으로 뛰어다녔다. 말도 야단스럽게 뛰어다녔다. 이곳이 전장이었다.
“아버지.”
아틸라가 고개를 돌렸다.
“로마에 꼭 입성하셔야 하나요?”
아틸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아들 에르낙을 쳐다보았다.
“아버지 말씀대로 로마는 이미 우리의 것이라면 아버지가 로마에 발을 들이는 것이 싫습니다.”
아틸라는 아들 에르낙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너는 무엇이 걱정이냐?”
“알라리크가 로마에 입성한 후 갑자기 죽었습니다. 전 걱정이 됩니다. 로마는 영웅을 죽이는 땅인 듯 합니다.”
순간 아틸라는 에르낙을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에르낙이 아틸라의 팔을 흔들었다. 간절했다.
“아버지.”
아틸라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에스테스가 다가왔다. 아틸라는 옅은 미소를 순식간에 거두고 그에게 말했다.
“우리 진영에서 만난다. 만토바.”
에첼은 달리고 또 달렸다. 먼저 앞서 가버린 아틸라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 어느때 보다 그녀의 삶은 선명했다. 그러나 아틸라에게 가까워질수록 미사흔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강해졌다. 에첼에게 아틸라와 미사흔은 하나였는데 어느새 아틸라와 미사흔의 거리를 좁힐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었다.
“내가 아틸라와 함께 다시 신라로 가리라. 가서 왕자를 만나리라.”
그러나 그녀가 말을 달릴때마다 강렬한 폭풍이 몰아닥쳤고 에첼은 그때마다 폭풍속에 갇혀 자꾸 보이지 않았다. 아틸라가 이미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이탈리아를 횡단하며 에첼도 아틸라와 미사흔이 하나가 되지못하는 자신의 감정을 유린당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잿더미가 되어가고 있었다.
호노리아 공주는 오에스테스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묘한 색정의 눈빛으로 오에스테스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진심을 모른 척 했다. 각자의 모순과 각자의 비애였다. 로마를 지배하고자 했고 자식을 내세워 섭정을 하고자 했고 후에 자신의 아들을 황제와 자리에 올리려고 했다. 두 사람은 쌍둥이였다.
‘색녀로군 천성적으로.’
오에스테스는 무언가를 호노리아 공주에게 슬쩍 주었다. 호노리아 공주는 슬쩍 받았다.
“확실한가요?”
“효과는, 네 그렇습니다.”
오에스테스는 대답과 함께 일어나려고 했다. 몸이 무거웠다.
“아들이 매우 잘생겼더군요. 허벅지가 돌덩어리 같았습니다. 슬쩍 만져보았습니다. 제가 자꾸 마음이 갑니다.”
오에스테스는 다시 앉았다. 역시 몸이 무거웠다.
“제 아들은 가만 두십시오. 제가 한 번 상대해드 리겠습니다.”
오에스테스는 이미 배가 불러 퉁퉁 부어버린 호노리가 공주에게 성큼 다가섰다. 그래도 수컷이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