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이 시험대에 올랐다. 기획재정부의 하반기 재정사업 심층평가 대상이 됐다. 정부 재정사업 예산이 제대로 쓰이는지, 효과는 있는지 살펴보는 평가다. 이 평가 대상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국가 R&D사업에 문제가 있음을 정부가 인식한 셈이다.
그간 국가 R&D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상용화 기술이 있는데도 버젓이 새 과제를 기획해 헛돈을 쓴다. 타당성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한다. 참여자끼리 서로 짜고 나눠먹는다. 부적절하게 비용을 처리한다. 예산 낭비, 유용과 같은 그릇된 행태가 왜 발생하는지 그 뿌리를 확실히 찾아야 한다. 그래야 근본적인 예방책이 나온다.
악의적 행위라면 처벌 강화로 해결할 수 있다. 연구비 환수는 물론이고 민형사 처분, 과징금 등 죄과를 마땅히 물어야 한다. 마침 미래창조과학부는 연구비 부정 사용 시 과징금 성격의 제재부가금을 물게 하는 반면에 성실한 실패에는 불이익을 면제해주는 쪽으로 ‘국가 연구개발사업 관리 규정’을 개정, 28일부터 시행한다.
웬만한 문제는 관리를 강화하기만 해도 사라진다. 다만 그 관리를 지금처럼 정부와 산하 유관기관에만 맡길 일은 아니다. 누구나 문제라고 여겨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차라리 기획부터 실행까지 상세 내용과 처리 내용을 민간에 공개하는 것이 낫다. 수시로 검증을 받게 한다면 애먼 기획을 감히 추진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참에 R&D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예산 낭비나 유용 중 일부는 경직된 연구비 관리 체계 때문에 나온다. 눈에 띄는 연구비 집행만 보여주려다 보니 불필요한 고가 하드웨어 구입에만 매달린다. 연구에 따라 인건비가 많이 들어야 하는 사업도 있는데 일률적 규정을 피하려고 다른 예산을 전용하기도 한다. 이 점에서 R&D 심층평가 전담팀에 자문단으로 참여할 연구원과 기술 수요자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내년 봄 나올 혁신방안에 이들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아야 사업 수행자가 연구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