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구촌은 소프트웨어(SW) 중심사회로 옮겨가는 도도한 혁명이 진행중이다. 인류는 그간 농업혁명, 금융혁명, 산업혁명 같은 많은 ‘혁명’들을 거쳐왔다. 하지만 이번 SW혁명은 성격이 매우 다르다. SW 혁명은 마치 수소폭탄을 터뜨리기 위해 기폭제로 사용되는 원자폭탄과 같아서 ‘다른 모든 분야의 혁명을 촉발시키는 혁명 중의 혁명’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보자. SW는 인터넷, 와이파이(WiFi), 스마트폰 등으로 제2의 통신혁명을 일으켰다. SW는 카드결제, CD·ATM, 모바일 결제, 핀테크 등으로 제2의 금융혁명을 불러왔다. SW는 정보·감시·정찰·정밀타격 그리고 드론과 같은 무인기를 하나의 복합체계로 연계시키는 군사기술 혁명을 가져왔다. SW는 제2의 교육혁명을 진행시키고 있다. 프린스턴대가 온라인 강의를 시작한지 1년 만에 수강생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칸아카데미가 중·고등학교 온라인 강의를 시작한지 2년만에 미국 하위 7%에 머물던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빈곤층 학생들의 평균 학업성적이 상위 2%로 껑충 올라서는 결과가 나타났다. 나아가 SW는 제2의 산업혁명을 불러왔다. 하버드대 러너 교수는 SW 특허 중 87%가 제조업에서 나오는 특허로 분석했다. 테슬라는 거의 모든 공정이 로봇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이 동력을 동물로부터 증기기관으로 바꾼 ‘근육혁명’이었다면, 지금 SW에 의한 혁명은 ‘두뇌혁명’이다. 두뇌는 신체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므로 SW 두뇌혁명이 일어나면 제2의 산업혁명은 필연적으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미국 정부는 3D 프린터도 21세기 제조업의 지평을 바꿀 4대 중요한 기술의 하나라고 제시했다.
지구촌은 지금 신속히 SW 중심사회로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 때문에 핀란드 교육부 장관은 ‘내 머리 속에는 SW 코딩 교육밖에 들어있지 않다’고 우리나라 국가교육과정 정책자문위원장에게 말했다고 한다. 하버드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도 이젠 SW 과목 CS50로 바뀌었다고 한다. 컴퓨터학과는 이제 미국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과의 하나가 됐다. 옥스퍼드대 연구원들은 미국 직업의 47%가 10~20년 이내에 정보화 때문에 사라진다고 예고했다.
뉴욕타임즈는 미국 초등학교 학생들의 65%가 졸업한 후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새로운 직업에 종사하게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산업혁명 이전의 수많은 직업들이 사라지고 대신 수많은 직업들이 새로 생겨난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존재하는 직업 중 상당수가 SW 때문에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들이 SW때문에 생겨날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핀란드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하버드대 학생들까지 연일 SW 교육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회가 SW 혁명에 임하고 있는 자세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도처에 기성세대나 기득권층이 정보화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 정보시대에 대비해 자녀들에게 SW 교육을 가장 먼저 강조해야할 학부형들이 오히려 자녀의 SW 공부를 가로 막고 있다. 학교는 학교대로 전산직 교사를 뽑지 않고, 대부분 학교에 실습용 컴퓨터도 없다. 그런데도 학부형들은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전세계적으로 새로운 경쟁력과 새로운 일자리는 모두 정보화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각 분야의 기득권층들은 오늘도 계속 공인인증서를 고집하고, 공공데이터 개방을 방해하며, 각종 규제를 통해 금융정보화를 가로막고, 불법복제를 통해 SW 개발의욕을 꺾고 있다. 이들은 모두 우리 자녀와 차세대의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결과적으로는 공공의 적과 같은 세력들이다. 우리나라는 컴퓨터학과가 가장 인기 없는 분야가 된 유일한 나라가 됐다.
과거 영국이 산업혁명에서 승자가 됐던 것은 ‘기술 선진국’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 기술력은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영국보다 훨씬 앞섰다. 그러나 영국은 산업혁명을 가로막던 기득권층들을 성공적으로 다스렸다. 자국내 관세를 고집해 상품교육을 가로막던 제후들, 생산을 독점하고 공장 건설을 가로막던 길드를 과감히 정리했다. 또 사유재산권을 철저히 보호해줌으로써 개발자와 기업가들의 의욕을 적극 끌어냈다. 바로 이런 혁신 때문에 영국이 산업혁명에서 승자가 될 수 있었다.
정보혁명은 결코 미래창조과학부나 컴퓨터 전공자의 기술과 힘으로만 일궈낼 수 있는 과업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과거 일본에게 산업혁명에 뒤져 나라까지 잃는 뼈아픈 수모를 겪었다. 이번 SW 혁명에서는 일본 뿐 아니라 중국에게도 이미 추월을 당하고 있다. 매우 무거운 심정으로 이글을 쓴다.
고건 이화여대 석좌교수 kernko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