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산업의 고성장은 시장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데다 우리 기업이 선제적 투자로 확실한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대표적 메모리반도체인 D램 시장은 지난 2013년 350억달러에서 올해 453억달러로 29.5%나 성장했다. 내년에도 10.0% 성장해 498억달러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1990년대 세계적으로 20여개에 달했던 메모리반도체 제조회사는 치열한 ‘치킨 게임’을 거치면서 현재는 D램 기준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3개 회사만 남았다. 이들은 이제 서로 칼 끝을 겨누기보다는 적당히 생산량을 조절하면서 ‘호황’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독주체제
시장 확대가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독주체제를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시장 점유율은 각각 35.1%와 21.5%였다. 올해 두 회사는 시장에서 40.0%, 27.3%의 점유율이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불과 4년 사이 57.5%에서 67.3%로 10%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세계 시장에서 D램 3개 가운데 2개는 ‘KOREA’ 브랜드를 달고 있는 셈이다.
낸드플래시도 시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시장은 지난해 283억달러에서 올해는 306억달러로 커지고 내년에는 334억달러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분기 38.5%이던 점유율을 지난 2분기 40.6%로 끌어올리며 사상 처음으로 40%대 고지를 밟았다.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였던 SK하이닉스도 같은 기간 점유율을 17.1%에서 19.4%로 높이는 데 성공했다.
◇시장은 커지고 경쟁은 약해졌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업황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호황을 누릴 것으로 예상한다. 기존 시장이 유지되는 가운데 자동차와 모바일, 사물인터넷(IoT), 플렉시블 디바이스 등 새로운 수요처가 계속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메모리 반도체의 단가 하락은 불가피하지만, 기존 디바이스에서는 프리미엄 반도체로 대체 수요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다 이전에는 없던 사물인터넷·플렉시블 디바이스 같은 신제품에도 반도체가 필수적으로 탑재되는 구조다. 솔리드스테이드드라이브(SSD)도 메모리 반도체의 차세대 핵심 수요처로 주목받고 있다.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경쟁은 오히려 약화됐다.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적자를 감내하며 싸우던 시대는 지나갔다. 1990년대말 일본의 히타치, 후지쯔가 시장에서 철수했고 2000년대 중반에는 독일 키몬다와 일본 엘피다가 시장에서 사라졌다. 현재 D램 시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의 3강 구도로 정리된 상태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애널리스트는 “메모리 반도체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많은 설비투자가 필요한 장치산업이기도 하다”며 “국내 업체가 기술 우위를 토대로 수익을 내고 이를 다시 재투자하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어서 단기간 내 강력한 경쟁자가 출현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투자 확대·신기술 확보로 중국 도전에 대비
과거 여러 산업에서 선두주자가 현 상황에 안주하다가 후발주자에 역전 당하는 일은 수차례 반복돼 왔다. 우리나라도 메모리반도체에서 이 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면 투자와 기술 혁신을 이어가야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20나노 기술, 3D 적층 기술 등에서 경쟁자보다 한 발 앞서있다. 처리속도를 높인 차세대 제품인 DDR4, 저전력(LP)DDR4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경쟁자보다 먼저 양산에 돌입했다. 이는 우리 메모리반도체 사업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전망이다.
업계가 눈여겨 보는 것은 중국의 도전이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수요의 절반 가까이를 소비하는 가운데 정부 주도로 대대적 투자에 나서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가 아성을 쌓고 있는 메모리반도체에는 본격적으로 진입하지 않았지만 언제든 공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호황기에 경쟁사보다 한발 앞선 투자로 공정기술, 양산능력의 우위를 계속 확보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미래 수요처에 대한 정확한 시장분석과 생산량, 투자속도 조절 등이 잘 맞아떨어져야 대한민국 반도체 호황의 기간을 최대한 길게 가져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