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리고 휘고 돌돌 마는 플렉시블 전자기기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제조업체가 각종 전시회, 발표회에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배터리·부품 등을 앞다퉈 선보이며 플렉시블 기기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달아오르고 있다. 그간 시장을 주도하던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스마트와치, 스마트밴드 등 웨어러블 기기의 본격 확산도 점쳐지면서 플렉시블 기술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업계에서는 이르면 내년이면 유연함을 체감할 수 있을 만큼 개선된 제품이 출시될 것으로 내다본다. 동시에 플렉시블을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첨단 전자소재 발굴을 위한 경쟁 역시 치열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모듈 분야에서는 최고의 기술력과 경험을 확보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재 경쟁력은 부족한 상황이다. 모듈 기술력과 달리 플렉시블 관련 핵심소재와 장비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 대비 2년 내외의 기술 격차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플렉시블 기판 핵심소재 ‘폴리이미드’
시장조사 업체 IHS디스플레이뱅크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판 시장 규모가 오는 2020년 5억670만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소재로 플라스틱이 꼽힌다. 고온 공정이 어렵고 광학적 특성과 균일성 등이 떨어지는 약점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탄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출시한 갤럭시 엣지의 ‘커브드 엣지 디스플레이’는 기판으로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이미드(PI) 필름을 활용했다. LG디스플레이가 지난 7월 공개한 18인치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역시 유연기판으로 폴리이미드를 사용해 두께를 줄이고 유연성을 확보했다.
폴리이미드는 유연성과 복원력이 우수하고 충격에 강한 고분자소재다. 다양한 플라스틱 소재 중 내열성과 전기절연성 등이 가장 우수한 편에 속해 우주항공 산업부터 반도체, 디스플레이, 에너지, 산업 등에 활용되고 있다. 또 각종 전자기기에 사용되는 연성회로기판(FPCB)과 연성동박적층판(FCCL)의 핵심 원재료다.
국내는 SKC코오롱PI 등이 투명도를 개선한 폴리이미드 필름을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용도로 개발하고 있다. 현재 기존 폴리이미드필름 세계 시장에서 일본 카네카와 SKC코오롱PI가 각각 20%대 점유율을 차지하며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그 뒤를 도레이듀폰과 듀폰 등이 쫓고 있다.
◇다양한 신소재 각축 벌이는 TSP
현재 전자기기 터치스크린패널(TSP) 대부분은 일본 닛토덴코사가 사실상 독점(점유율 80% 이상)하고 있는 인듐주석산화물(ITO)필름을 소재로 사용한다. 하지만 ITO필름은 희귀광물인 ‘인듐’을 사용하는데다 유연성이 떨어져 활발한 대체소재 발굴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부터 탄소나노튜브(CNT), 은나노와이어, 메탈메시, 전도성 고분자 등이 대표적이다.
상보와 시노펙스, LG이노텍, 일진디스플레이 등 국내 대표적인 TSP 업체 들이 이들 신소재를 적용한 플렉시블 터치 센서를 개발하고 있다. CNT와 은나노와이어, 메탈메시 등은 상당부분 상용화에 근접했다. 기존 시장을 견고하게 선점하고 있는 ITO필름의 장벽에 가로막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본격적으로 플렉시블 시장이 개화되면 차세대 주자가 가려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ITO필름 대비 상대적으로 뒤쳐졌던 투과율이나 생산 수율 문제도 빠르게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며 “차세대 플렉시블 TSP 소재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기술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배터리, 패키징도 ‘플렉시블’
전문가들은 완벽한 플렉시블 기기 구현을 위해선 디스플레이 외에도 반도체와 배터리, 패키징 등 각 요소 기술의 발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눈앞으로 다가온 플렉시블 시대 핵심 성장 동력은 소재에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SDI는 종이컵을 감싸는 수준의 곡률을 보이는 플렉시블 배터리를, LG화학은 구부리고 매듭까지 묶을 수 있는 케이블형 배터리를 선보이며 플렉시블 배터리 시장을 정조준했다. 플렉시블 배터리는 웨어러블 산업 성장과 함께 급격한 수요 증가가 기대되는 시장이다.
카이스트 연구진은 올해 초 기존 패키징 작업에서 사용되는 솔더(납땜)을 대체할 수 있는 신소재 ‘이방성 전도성 필름’(ACF)을 개발, 반도체를 자유롭게 휘어질 수 있도록 했다. 전극을 유연하게 연결하면서도 소자를 보호할 수 있는 ‘열경화성 폴리머 필름’ 등으로 구성됐다.
반도체 패키징 전문기업 하나마이크론은 최근 자체 개발한 플렉시블 패키지 공정기술을 적용한 마이크로SD카드를 상용화해 주목을 받았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