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기업에서 새로운 개념의 기술을 개발하면 우선적으로 특허 등록을 하는 게 일 순위 작업이지만 디스플레이 분야 장비·소재 업계에선 예외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 침해 우려가 주된 이유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소재 업체들이 특허 등록보다는 ‘노하우성’으로 기술 자체를 보호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대기업 혹은 경쟁 업체들이 특허 기술을 모방하는 사례가 많다는 피해 의식 탓이다.
최근 한 중소 장비 업체 A사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관련 신소재와 함께 관련 증착 장비를 개발 완료했지만 특허 등록을 미루고 있다. 앞서 소재의 일부분을 특허 등록했다가 경쟁 업체에서 관련 내용을 도용해 소재 개발에 나서 상용화한 ‘아픈 추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A사가 개발한 소재는 합성 비율 등이 중요한 내용인데, 고객사를 확보하기도 전에 특허로 내용이 일부 공개되면서 후발 주자들이 바로 추격해온 빌미를 제공했다는 판단이다.
A사는 특허권을 침해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법률전문가 조직을 갖춘 중견·대기업과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 결국 특허 침해 소송을 포기하고 말았다.
A사 대표는 “업체에 항의를 했더니 법대로 하라는 말밖에 들을 수가 없었다”며 “소송을 걸어서 이겨도 사실상 손해였고 지면 더 큰 손해였기 때문에 그냥 중단했다”고 털어놨다. 이 회사는 이후 개발된 장비의 핵심 기술을 특허 등록하지 않고 있다.
B사는 독보적인 기술임을 공식적으로 증명하라는 대기업의 요청에 특허 등록을 했다. 이후 1년 반 뒤 자료가 공개되면서 대기업의 한 계열사가 똑같은 기술의 제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B 회사는 이들을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할 수 없었다. 소송비용도 문제였고, 그 과정에서 다른 업무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 크게 우려됐기 때문이다. 이 회사에는 대기업과 기술 협력 끈을 놓아버리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에서 제조 원가를 낮추기 위해 기술력 있는 업체들의 자료를 다른 업체들과 공유하며 공동 개발시키는 사례가 많다”며 “특허가 문제시되면 대기업은 당사자가 아니니 협력 업체끼리 알아서 하라고 빠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박주태 변리사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쉬운 기술이나 제품은 노하우로 사내에서 기밀 유지해 나가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은 다양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갖추는 것”이라며 “특허 한두 가지를 가지고 규모가 큰 기업들과 싸우기는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폭넓은 특허 포트폴리오를 갖춰 대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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