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고급 인력의 탈(脫) 한국현상, ‘두뇌유출’이 심각하다.
◇미 박사학위 받은 한국인 63%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두뇌유출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인력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활동하는 현상을 뜻한다. 유학생들이 해외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후 모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교육받은 곳에 잔류하거나 고급두뇌들이 자국이 아닌 외국에서 활동하기 위해 이동하는 것이다.
본지가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07부터 2013년까지 총 1만80명의 한국인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62.9%가 미국 잔류를 희망했다. 100명 중 63명이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이는 아시아 국가 중 일본, 싱가포르, 태국보다 높은 수치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 박사학위 취득한 일본인의 48.5%가 미국 잔류를 희망했고, 싱가포르는 44.0%, 태국은 27.8%였다. 일본, 싱가포르, 태국보다 우리나라가 귀국을 꺼리는 박사들이 더 많다는 얘기다.
이공계 박사의 한국행 기피는 더 심각하다. 미국 국립과학재단 조사에서 이공계 박사(Science & Engineering)를 취득한 한국인 가운데 미국에 머물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2008~2011년 67.9%에 달했다.
앞서 조사된 2004~2007년에는 69.3%, 2000~2003년에는 68.6%가 미국에 남겠다고 밝혀, 이공계 박사 학위자의 미국 체류 의사는 전체 평균보다 높은 경향을 보였다.
미국 박사 현황은 우리나라 해외 박사의 대표성을 띠고 있다. 해외 박사 학위의 대부분이 미국에 집중된 탓이다.
대학교육연구소가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1945년부터 2013년까지 외국박사 학위자는 총 3만7879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57%인 2만1432명이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다.
◇심각한 두뇌유출
잔류 희망과 실제 체류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취재 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인재들이 상당하다는 판단이다.
먼저 미국에서 이공계 분야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인의 100명 중 45명이 미국에 남고 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은 미국 체류를 확정한 경우를 별도 집계한다. 과학재단 최신 조사에 따르면 2008~2011년 체류를 확정한 비율이 44.6%에 달했다. 앞선 2004~2007년에는 43.5%, 2000~2003년에는 45.7%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이공계 분야 미 박사학위 취득자 수는 3541명(2000~2003년), 4767명(2004~2007년), 4868명(2008~2011년)으로 증가해왔다. 미국에 남은 한국인 이공계 박사 수 역시 각각 1610명(2000~2003년), 2070명(2004~2007년), 2170명(2008~2011년)으로 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국내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국내 돌아와 신고하는 해외 박사 인력이 해마다 줄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 신고한 사람은 취득년도 기준 2003년 734명에서 2013년 334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는 115명(12월 22일 기준)에 불과해 최근 10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또 미국을 포함해 해외 전체를 대상으로 한 외국 박사학위 신고통계에서도 신고자수는 2003년 1512명에서 2009년 1143명, 2012년에는 836명으로 감소한 후 지난해는 283명에 불과해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미국 대학을 상대로 조사하는 국립과학재단의 통계와 달리 한국연구재단의 통계는 학위 취득자의 자발적 신고에 따른 것으로 실제 귀국자와는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귀국한 날부터 6개월 이내 교육부장관에게 학위논문과 학위종별, 논문제목, 학위수여국, 학위수여교 등이 담긴 박사학위신고서를 신고하도록 돼 있다. 박사학위자들이 선호하는 국책 연구소, 대학 등에서 근무하려면 신고필증을 받아야 한다.
박사학위 신고자의 급격한 감소는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 학위 취득 후 귀국하지 않는 박사들 또한 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우리나라의 두뇌유출에 대한 문제는 다른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하는 두뇌유출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IMD가 평가한 우리나라 두뇌유출지수는 4.63점(2013년 기준)이다. 두뇌유출지수가 10에 근접하면 유출이 거의 없어서 국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고, 0에 근접하면 유출이 많아 국가 경제 발전에 피해를 준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두뇌유출지수는 어느 정도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지는 상태다. 또 미국(7.11점, 5위), 스웨덴(7.51점, 3위), 싱가포르(5.78점, 17위)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인 인도(5.89점, 15위) 보다 더 심각한 실정이다.
김영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제조업 공동화와 같이 ‘연구인력의 공동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고급 인력 이탈은 연구개발 능력 저하로 이어지고 연구 약화는 곧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 약화를 의미해 앞으로 해외 인력과 기술에 의존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