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대통령 주재 국정과제 회의에서 긴장감으로 인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 앞에서 장장 두 시간에 걸친, 통합형사사법체계의 지속 여부에 대한 찬반 양 진영의 치열한 공방전이 끝나고 대통령의 결심을 기다리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일각이 여삼추’라고 잠시의 침묵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 없었다. 그 결심에 따라서는, 필사적으로 논리를 펼쳤던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었다.
“오재인 교수님이라고 하셨어요?” 그 순간 결과가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사업 계속합시다. 오해가 없도록 명칭은 형사사법통합정보체계(형통망)로 바꾸고…” 공공부문 자문위원을 하면서 그때만큼 큰 보람을 느낀 적도 없었다.
‘공무원들은 이런 보람으로 사는구나. 박봉에도 불구하고…’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회의를 계기로 형통망 사업의 지속 여부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 즉 대한민국 전자정부 핵심 과제였지만, 개인정보보호 이슈로 인해 중단될 뻔했던 형통망 사업은 탄력을 받아, 추진단 조직도 증설되고 예산도 증액됐다. 그 이후 2010년 7월 전면 개통됐을 때 감회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술김에 실수로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렀는데 도대체 나한테 어떠한 처벌이 떨어질까?” 불안해서 잠 못 이룬 적은 없었는가? 형통망 덕택에 과거 우편으로 송달 받던 양식명령, 벌과금고지서를 온라인으로 ‘신속’ 확인, 심리적 불안감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됐다. 현 정부의 ‘국민행복’ 비전 달성에도 크게 일조한 것으로 자부한다.
더불어 우리 전자정부 사업 중 출입국심사, 전자조달, 홈택스, 전자무역 등은 국제기구에서 우수 사례로 뽑혀 해외에서도 널리 인정받게 된다. 사회안전 등 국가현안의 해결 수단, 모바일로 국민이나 기업에 옴니 행정서비스 제공, 정부3.0과 같은 정보 공개 등에 힘입어 UN공공행정상 수상과 전자정부 평가 3회 연속 세계 1위라는 쾌거도 이뤘다. 이러한 국제사회에서의 탁월한 전자정부 브랜드 구축은 민간까지 파급돼 우리 기업들은 세계 도처에서 전자정부 사업 역군으로 수출에 기여하고 ‘행정 한류’까지 구축해가고 있다.
그때 국정과제회의에선 형통망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민감한 범죄정보가 관리 부주의나 해킹으로 유출되면 범죄자뿐 아니라 피해자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이에 대한 나의 주장은 한결같았다. “9·11테러를 보라. 비행기가 납치됐다고 항공사들이 비행기 운행을 전면 중단했는가? 피해 보상과 보험처리 그리고 무장승무원 탑승과 같은 보완책을 병행하면서, 항공기 운항은 계속됐다. 형통망도 공공부문 혁신, 대민서비스 개선 등 획기적인 효과를 감안해 해킹에 대한 피해 대책도 병행·추진하면 된다. 또 정보보호 침해에 대한 보험제도 도입 등 근본적인 인식 전환으로, 만약의 피해도 처리해 줄 뿐 아니라 관련 보험산업도 활성화해야 한다.”
해는 ‘석양이 질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가. 가장 찬란한 순간은 다름아닌 추락의 시작을 의미한다. 얼마 전 정부 보고서에서 ICT ‘홀대’라는 표현을 보고, 대한민국 전자정부야말로 ‘석양이 질 때’라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잃어버린’ 하면 흔히 일본의 부동산 버블로 인한 장기 침체를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 전자정부도 ‘잃어버린’ 세월 동안 ‘홀대’가 반복되면서, 전자정부 예산과 새로운 과제발굴 동력이 떨어졌다. 대한민국 전자정부 미래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는 시점에서, 정부가 지난해 ‘전자정부 민관협력포럼’을 발족, 불씨를 다시 지핀 것엔 경의를 표한다.
이러한 불씨가 거듭되고 관련 전문가들의 열정과 내공이 응집될수록 ‘석양이 질 때’와 같은 찬란한 대한민국 전자정부 경쟁력은 지속될 것이다. 예컨대 전자정부와 글로벌트렌드인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소셜미디어 등과 결합, 부단히 진화를 거듭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비근한 예로, 행정정보공동이용센터는 그 기능이 각종 민원신청 시 구비서류를 제출하지 않아도 민원담당자가 전산망으로 확인, 처리하는 전자정부 서비스에 그치고 있다. 향후 공공기관의 정책 기획, 집행, 성과, 환류 등 빅데이터도 공유, 평가하는 전략적 역할로 확대해 ‘정책지원처’로 발전되기를 기대해 본다.
오재인 단국대 상경대학장 jioh@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