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소리만 요란한 통일금융, 녹색금융 닮은꼴...국제 사회 합의 이끌어내야

정부가 통일 이후 남북의 경제제도 통합 등을 연구하기 위해 가동하기로 했던 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 회의가 무기한 연기됐다.

‘통일 대박’으로 요약되는 박근혜정부의 통일 구상 일환으로 정부 차원에서 선제적이고 학문적으로 준비를 하겠다는 취지였지만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 방안을 논의한다는 잘못된 해석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슈분석]소리만 요란한 통일금융, 녹색금융 닮은꼴...국제 사회 합의 이끌어내야

다만 통일경제TF 회의에서 진행하려던 통일경제 연구는 지속하기로 했다. 대외적으로 TF를 가동하지 않지만 비공개로 진행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른바 박근혜 대통령의 대박론에 맞춰 올해 통일금융이 기술금융과 함께 새로운 창조경제 원동력으로 부상했다. 국책은행과 시중은행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전담조직을 꾸리고 통일금융 상품을 연이어 쏟아냈다.

수출입은행은 북한개발연구센터를 개설했고 산업은행도 조사분석부 국제경제팀 내에 동북아경제파트를 신설해 북한 관련 연구에 착수했다. 금융연구원도 통일금융연구센터를 출범했다. 한국은행은 물론 시중은행까지 전담팀을 꾸리거나 관련 부서 신설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부 주도의 통일금융 움직임이 업무 중복은 물론 시장 왜곡과 부실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통일금융 상품을 통해 통일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통일 재원 마련에 일조하려는 금융권의 움직임은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과거 녹색금융처럼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부실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우후죽순 쏟아졌던 녹색금융 상품은 현재 대부분 판매가 중단됐다.

◇북한개발 재원 규모 5000억달러 이상

정부가 구상 중인 통일 후 북한 개발에 필요한 재원은 약 5000억달러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주요 인프라, 산업육성에 1750억달러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는 초기 불확실성으로 인한 민간 투입이 어려운 때를 감안해 정책금융기관이 개발 재원의 50~60% 수준인 3000억달러 이상을 조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외 OCA를 통한 재원 조달은 170억달러 수준이고 향후 수익성이 확보된 프로젝트와 경제특구 등을 통해 민간자금(약 1072억~1865억달러)을 유치하고 북한 자체에서 창출되는 재원도 약 1000억달러가량을 활용한다는 밑그림을 그렸다.

특히 상업은행 제도를 마련하고 정책금융기관을 정비한 후 은행시스템 안착 여부를 가늠해 제2금융권 육성에 나선다는 복안도 마련했다. 예금보험제도와 지급결제제도, 금융감독제도 등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경제 통합 시 발생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과 대외 지급여력 약화, 재정적자 급증 등 거시경제 불안정성 대비를 위해 화폐제도, 중앙은행제도 등을 정비하고 탄력적인 금융정책 운영 기조를 유지해 나갈 예정이다.

아울러 기관투자자, PF, 기업, 가계 등 민간 경제주체들은 민간 금융회사의 자본시장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재원 조달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막연한 통일 대박 벗어나 리스크 예측과 국제 합의 이끌어내야

정부 주도의 통일금융 기조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통일 낙관론에서 시작됐다. 이 막연함은 금융권의 단편적인 상품개발로 국한되고 과거 녹색금융처럼 일회성 전략으로 그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전문가들은 통일금융이 정치적인 통일의 가시화 여부와는 별개로 북한의 사회주의 금융시스템이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을 반영한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국내 은행들이 주요 플레이어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전상욱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전략연구실장은 “지속가능한 은행으로서의 기본적인 경쟁역량을 바탕으로 북한경제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중국·EU 국가 등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해외 은행과의 협력관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금융〃경제의 혼란, 해외 은행들의 시장 선점 등 통제하기 어려운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어 기초 체력이 약한 은행들은 오히려 생존조차 보장받기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통일금융의 성공 포인트는 앞서 통일을 경험한 서독 은행들의 동독 진출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도이체방크와 드레스드너방크는 시장 확대를 위해 동독 국립은행의 상업은행 부문을 인수하고, 자체 지점도 새로 설치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특히 도이체방크는 도이체방크-베를린이라는 자회사까지 설립해 지점을 대폭 확대했다. 이에 도이체방크와 드레스드너방크는 경제통합일에 이미 동독지역에 각각 146개와 107개 지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반면에 코메르츠방크는 금융회사 인수나 합작 자회사 설립 없이 직접 지점을 개설했다. 이에 이 은행은 통합일 당시 동독지역에 21개 지점을 설치하는 데 그쳤다. 서독 은행들의 이 같은 다른 초기 전략은 동독지역 시장 선점에 큰 영향을 미쳤다. 리스크가 거의 없는 신탁청 보증 여신을 도이체방크(점유율 61.9%)와 드레스드너방크(35.7%)가 독식한 반면에 코메르츠방크(2.4%)는 초기 시장 선점에 실패했다.

이는 통일금융이 북한 금융시스템의 자본주의 금융시스템 이해와 남북 금융시스템 통합과정 기회요인, 리스크 요인을 꼼꼼히 분석하고 준비해야 함을 의미한다. 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한의 일원적인 은행제도를 이해하고, 세부 과제를 단계적으로 도출해야 한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