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SW)가 전자·자동차·조선의 가장 중요한 바탕기술이고 산업적으로 국가 기간산업임을 이젠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SW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정부가 유지보수 요율을 올려서 SW를 수출 중심 산업으로 살리기 위해 애를 쓰지만 아직도 SW업계는 내수 타깃의 출혈경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업계의 ‘하면 된다’는 의식과 정부의 ‘국민의 혈세를 절약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두 가지 오래된 의식이 ‘저가 경쟁’을 부추기고, SW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가 오늘 같은 대한민국 번영의 디딤돌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앞서가는 선진국을 따라 잡기하면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열정과 도전의식 그리고 국가와 사회에 대한 집단적 충성심 덕분에 이만큼 잘살게 된 것이다.
좋은 제품을 싸게 공급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기업의 사회에 대한 책임이자 의무다. 그러나 이런 의식이야말로 저가 경쟁을 부추기는 SW업계의 오래된 나쁜 습관이다. 정부가 ‘저가 경쟁’을 막으려고 애를 쓰지만, 업계가 의욕에 넘치는 마구잡이 열정을 갖고 덤비면 사회와 국가가 이를 말릴 수 없게 된다. 지식재산권(IP)이 없는 제품으로 경쟁하고, 전문성 없이 외산 제품을 복제하거나 베끼기를 한 다음 ‘저가’만을 무기로 시장에 뛰어드는 행위는 SW산업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유해한 요소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많은 자본을 투자해 신생 회사를 인수하고, 가끔씩 터져 나오는 블랙베리 인수설에 왜 천문학적인 금액이 회자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SW 산업인들이 있는 한 한국 SW의 발전은 요원하다. 벤처들은 벤처대로, 새로운 기술을 베끼기 하고 짝퉁 제품을 만들어 저가에 납품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SW 수출이 안 된다고 불평하지만, 미국 시장과 선진국 시장에 침투할 수 없는 아주 간단한 이유는 IP 없는 모조품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 연구자금 집행 때마다 ‘국민의 혈세’라는 수식어가 반드시 따라 붙는다. 컵을 만드는 기술이 흙에서 나무와 도자기로, 철과 유리로, 그리고 플라스틱과 탄성재료로 바뀌어 왔다. 심지어 종이로 만드는 컵도 있고, 천으로 만든 컵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연구과제에서 ‘컵’이라는 말만 들어가도 중복과제로 연구비를 회수하거나 아직도 컵을 연구해하면서 거절하기 일쑤다. 국민 혈세를 중복되는 과제에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IT분야 연구를 하고 있는 교수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IBM의 왓슨(Watson) 프로젝트일 것이다. 지난 30년이 넘도록 인간의 지능과 자연어처리, 추론 기능을 넘어서는 컴퓨터를 개발하겠다는 집념과 장기투자가 가져온 성과는 참으로 놀랍다. 체스 게임에서 세계적 선수들을 물리치고, 전국 퀴즈왕 대회(Jeffrey)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더니 의료 부문에서 의사를 훨씬 능가하는 실력을 선보였다. 드디어 IBM은 왓슨 재단을 출범시키고, 클라우드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투자 상담을 시작했고, 지난해부터는 실제로 싱가포르에 있는 은행의 투자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1980년대 우리나라 학계에는 인공지능, 자연어 처리 기술 개발 열기가 뜨거웠고, 업체들은 CAD, GIS 등의 새로운 기술 개발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하지만 정부가 바뀔 때마다 기술개발 중점 분야는 ‘복지’에서 ‘신기술’로, 그리고 ‘실용’ ‘창의적 연구’로, 최근에는 ‘재난 방지’로 옮겨 가면서 인공지능 기술이나 자연어 처리 기술은 ‘성과’를 요구하는 정부의 요구에 밀려 학계와 시장에서 대부분 사장됐다 지금은 왓슨 컴퓨터에 필적할 기술도 없고, CAD나 GIS시장은 외산으로 채워졌다.
우리가 제조업 분야에서 일본 베끼기로 조선·전자·자동차는 성공했지만, 더 이상 짝퉁 기술로 승부를 걸 수 있는 시장은 없다. 중국의 13억 인구가 벌이는 ‘돈만 되면 무엇이든 베끼는 기술’ 방식으로 한국 사회가 글로벌 시장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가 ‘창의 경제’를 외치지만 정부 기관의 생각이나 산업계는 아직도 ‘하면 된다’는 구호와 ‘국민 혈세’라는 틀 속에 매몰돼 있다. 기업과 정부기관이 이런 의식과 인식을 버려야 SW가 살아난다.
최종욱 마크애니 대표 juchoi@markan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