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은 있지만 운영자금이 부족해 판로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국내 중소 소프트웨어(SW) 업계가 해외자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상생협력 약속을 믿고 국내 대기업과 손잡았지만 기술과 브랜드를 뺏기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투자에 적극적인 중국 등 해외자본에 기대려는 성향이 강해진 탓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기술유출 및 탈취 위험성이 높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대기업 상대 거래에서 피해를 본 중소 SW기업들이 잇따라 해외자본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영상분석 솔루션을 개발한 A사는 최근 국내 대기업과 협력을 중단하고 해외 판매루트 개척을 추진하고 있다. 한 대기업에 최근 1년간 제품을 공급하면서 해외 공동판매망 구축을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대기업은 계약기간이 끝나자 A사에 기술 매각을 권했다. 대기업이 제시한 기술 매입조건과 가격이 자사에 매우 불리하다고 판단한 A사는 기대감을 버리고 뒤늦게야 독자 노선을 걷기로 했다. 부족한 자본은 투자에 호의적인 중국기업으로부터 확보할 예정이다.
빅데이터 관련 기술 개발업체인 B사 역시 한 대기업과 협력해 신사업을 추진하다가 돌연 배제되는 불이익을 당했다. 핵심기술은 B사가 제공해왔다. 하지만 신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대기업은 B사를 배제한 채 독자 브랜드를 내놨다. 대기업 횡포에 실망한 B사는 판매망 구축을 위해 해외자본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모바일 솔루션 업체인 C사는 “대기업에 제품을 납품할 수 있어 안정적인 판매와 수익이 담보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핵심기술이 대기업에 공유되면서 제품이 송두리째 대기업으로 넘어가는 일을 경험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 회사는 다른 기업에 제품을 납품하려다 과거 협력 대기업이 제기한 라이선스 문제로 계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대기업의 거짓 상생 제스처에 환멸을 느낀 중소 기술기업이 자금난 타개와 해외시장 개척의 대안으로 해외자본에 손을 내밀고 있지만 이 역시 안전할 리 없다. 한 전문가는 “국내 기술기업에 호의적인 중국 등 해외자본을 유치하기가 과거에 비해 수월해졌다”며 “하지만 해외의 투자자들 역시 추구하는 목적이 우리 대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아 기술유출이나 탈취를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아직까지 지식재산권 보호가 미흡한 중국시장에서는 감수해야 할 위험이 여전히 크다”며 “중국이 막강한 자금력으로 국내 기술을 사거나 유통하려 하지만 아직 안전한 시장이라고 믿기 힘든 만큼 계약 사항을 면밀히 살펴야 불이익을 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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