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새 출발점에 섰다. 임기 3년의 여정이다. 그 여정에는 해묵은 숙제가 산적해 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김진형 소프트웨어(SW)연구소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SW개발 1세대다. 30년간 KAIST 교수로 재직하면서 SW정책에 줄기차게 쓴 소리를 했다. SW산업 발전을 바라는 애정 어린 고언(苦言)이었다.
그가 지난해 3월 문을 연 SW정책연구소 초대 소장에 취임했다. 교수에서 무대 위로 올라가 국가 SW정책을 기획하는 연구소 수장(首長)으로 변신했다.
SW중심사회 구현은 창조경제 핵심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23일 ‘SW중심사회 실현전략 보고회’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었다. 관련부처는 구체적인 실천전략을 내놨다. SW중심사회 실천전략에 거는 SW업계 기대는 크다. 그런 만큼 김 소장 어깨는 무겁다.
취임 1년을 맞아 김 소장을 3월 30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연구소 소장실에서 만났다. 연구소 입구 오른쪽 벽에 눈길을 확 끄는 대형 사인판이 걸려 있었다. 김 소장의 캐리커처를 중심으로 ‘산업혁명의 원동력 SW(최문기 전 미래부 장관)’ ‘SW강국 재건의 첫 걸음(남민우 전 벤처기업협회장)’ ’SW강국, 대한민국 세계로, 미래로 나가자(김흥남 ETRI 원장)’라는 각계 인사 30여명이 쓴 SW중심사회 구축을 기원하는 글이었다.
김 소장은 “SW중심사회는 정신혁명을 대신하는 새 시대 출발점”이라며 “과거 틀에서 벗어나 새 시대 변화를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수라는 말이 귀에 익어서 그런지 소장이란 말이 아직도 낯설다. 연구소에서도 나를 교수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소 운영에 민간방식을 도입했다. 직원은 연봉제다. 연구소 운영도 자율성을 보장받았다. 최문기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게 ‘최고 영향력 있는 연구소로 키우고 싶다’고 밝혔고 최 장관도 ‘좋다’고 했다. 지난해 7월부터 매주 월요일 오전 SW와 관계있는 각계 외부 인사를 초청해 강연을 한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송희준 정부3.0추진위원장도 이곳에 와서 강연했다.
-SW중심사회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었다는데.
▲연구소 설립 후 논의해서 정한 것이다. 미션은 SW중심사회의 싱크탱크로 결정했다. 비전은 산업과 사회변화를 선도하는 SW정책과 기술연구에 두었다. SW중심사회는 개방과 공유, 협동정신이 필요하다.
-SW중심사회는 어떤 의미가 있나.
▲큰 의미가 있다. 지난 역사를 보면 산업혁명이 육체노동을 대체해 산업사회를 이끌었다. SW혁명은 정신노동을 대체한다.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신문기사도 컴퓨터가 작성하는 시대다. 애플은 아이폰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구글은 무인자동차 시장에 진출해 자동차업계를 위협하고 있다. 법원 재판도 자동화하자는 말이 나온다. 일하는 방식이 변했다. SW중심사회는 새 시대 출발점이다. 모든 게 SW혁명이다. SW중심사회는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 빛은 사회가 안전하고 투명하게 변한다. 효율적인 사회를 만든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해법이 등장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SW가 모든 산업 기반이 된다. 창조와 혁신이 일상화하며 SW창업이 활성화한다. SW기업이 성장을 주도하고 SW능력이 바로 경쟁력의 척도다.
-나쁜 점은.
▲일자리가 줄어든다. 반면 새로 생기는 일자리도 있다. 새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잘 사는 나라가 된다. 일자리를 못 만들면 가난한 국가다. 일자리를 잘 만드는 나라는 미국과 독일, 중국이다. 미국은 벤처기업이, 독일은 ‘인더스트리 4.0’ 제조업성장 전략으로, 중국은 제조업으로 잘나간다. 우리도 뭔가를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SW가 해법이다. 그동안 우리는 SW에 너무 소흘했다. 김대중 정부는 “컴퓨터를 세계에서 가장 잘 쓰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당시 여러 가지 정책을 추진했다. 그 후 역대 정부에서 이를 지속하지 못했다. 그게 오늘 우리 현실이다.
-SW 안전성은.
▲SW 안전성은 심각한 문제다. 각 분야 SW의존도는 절대적이다. 자동차와 철도, 항공기, 원자력 발전소와 같이 사회 어디서나 SW가 핵심 역할을 한다. SW가 오작동하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보안(保安)과 안전(安全)은 세상의 두 기둥이다. 보안은 산업으로 발전했다. 보안 관련 제도나 법을 만들었다. 안전은 관심을 갖지 않았고 준비도 하지 못했다. 안전도 산업으로 발전해야 한다. 안전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연구소에서 안전문제를 다루나.
▲미래부가 연구소에 SW안전공학연구실을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안전을 위한 제도 마련과 국가시스템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기획설계를 담당한다.
-그동안 어떤 일을 추진했나.
▲연구소는 SW전반을 기획하고 집행은 정부나 관련 기관에서 한다. SW업계 문제점을 정리해 보니 세 페이지 정도였다. SW인력난, SW제값받기와 같은 과제가 너무 많았다. 이런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고민 끝에 우선순위를 정했다. 가장 시급한 것부터 하나씩 확실하게 개선하기로 했다. 첫 번째로 설계우선 발주제도(과거 SW분리발주제)를 마련했다.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법제화도 한다. 그동안 공공기관의 SW사업은 통합 발주했다. 설계우선 발주제는 건축에서 설계와 시공을 분리하듯 SW설계와 구축을 분리해 발주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SW업체들이 공공SW를 제값 받고 설계 산업도 육성할 수 있다. 정부는 수년 전부터 이런 방침을 밝혔지만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과 이야기해 지난해 8월 경제장관회의에 안건으로 올려 시행하기로 했다. 이 제도를 시행하면 지금 SW업계가 제기하는 문제 중 상당수를 해결할 수 있다. 아울러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같은 구축다양화 방안도 연구 중이다.
-SW인력난은.
▲심각하다. 능력 있는 전문 SW 인력은 구하기 어렵다. 국내 내로라하는 기업이 정보시스템 구축에 실패했다. 전문 인력 부족 탓이다. 구글이나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처우가 국내기업에 비해 월등히 좋다. 글로벌 시장으로 가는 그들을 잡을 수도 없다. 우리는 SW인력 관리 능력이 부족하다. 이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기업들은 일사불란한 걸 바란다.
-초·중·고 SW학교 교육은 어떻게 되나.
▲가장 중요한 게 교육혁신이다.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교사와 시설, 예산과 관련해 관련 부처와 같이 연구 중이다. 올해 시범사업을 4개교에서 한다. 교육부 안은 초등학교의 경우 연 34시간인데 미래부는 더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육시간이 적으면 전담교사 배치가 어렵다. 교육 시설도 김대중정부 시절 설치 후 업그레이드를 안했다. 미래부에서 손가락PC를 만들었다. 손가락 크기만 한데 교육용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시제품을 100개 만들었는데 4월에 1만개를 시범학교에 공급할 방침이다. 중·고교 교사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초등학교는 기존 교사에 대해 연수를 해 활용한다지만 중·고교는 선택과목이어서 교사가 없다. 보조교사는 자원봉사를 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온라인 교육을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SW관련 현안은 어떻게 해결하나.
▲정부가 미래부 차관과 고건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주관하는 ‘민관합동 SW TF’를 구성 운영한다. 연구소에서 안건을 올리면 TF에서 즉시 논의해 처리한다. 회의에 관계부처 실·국장과 유관기관, SW업계 대표, 개발자 대표가 참여한다. 전자여권 SW구매 시 외국계 기업만 응찰하도록 한 것도 이 회의에서 변경했다. 교육부가 국립대에 ERP시스템을 직접 공급하는 일도 개선했다.
-세계 SW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얼마나 되나.
▲아주 낮다. 통계에 잡히는 것을 보면 1% 정도다.
-공공데이터전략위원회 민간위원장으로도 활동 중인데.
▲국무총리가 정부 측 위원장이고 내가 민간 위원장이다. 산하에 실무위원회와 전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지난해 회의에서 정부가 데이터만 서비스하도록 했다. 그동안 관련부처에서 데이터를 가지고 서비스했던 교통과 기상예보, 특허 정보는 중단하도록 했다. 정부가 민간과 서비스 경쟁을 하는 것은 시장을 망치는 일이다.
-KAIST 제자들이 많지 않은가.
▲30년 재직했으니 제자가 1000명은 된다. 석사는 100명, 박사는 30명이 넘는다. 학교에 가서 교수하지 말고 창업하라고 강조했다. 현실은 냉혹했다. 기업하는 제자들을 위해 이 일을 한다. 기업하는 사람 말은 무조건 경청한다. 그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고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SW중심사회로 가는 길이다. SW친화적 문화가 필요하다.
김 소장은 서울대를 졸업한 뒤 미국 UCLA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 휴즈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지내다가 전길남 박사 권유로 3년간 고민 끝에 ‘조국을 위해 일하자’며 귀국했다. 1985년부터 KAIST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한국정보과학회장을 비롯한 각종 ICT관련 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현재 KAIST 앱센터 이사장과 정보통신전략위원, 창조경제타운 멘토, 공공데이터전략위원회 민간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는 골프. 미국 생활 10년간 닦은 실력이 싱글. 각종 IT골프대회를 석권했다. 언더파도 쳤다. 티칭 프로 자격증도 갖고 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