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만들려면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하고 무엇인가 발견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위기에 처해 쉽게 해결되지 않을 때는 그 부분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아예 제로부터 다시 생각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 히트제조기 나영석 PD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찾았다. 예능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겪은 성공과 실패를 이야기하며 과학자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제시했다.
15일 서울 KIST 본원에서 열린 ‘KIST 창의포럼’에서 나영석 CJ E&M PD는 ‘예능프로그램 만드는 법’을 주제로 강연했다.
나 PD는 자신을 스타PD 반열에 오르게 한 프로그램 ‘1박2일’부터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등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을 솔직하고 재미있게 풀어놨다. 그는 1박2일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로 기존의 관습적인 편집을 벗어난 점을 꼽았다.
나 PD는 “모든 일에 순서가 있듯 예능 프로그램 편집에도 관습적인 판단이 있다”며 “게임과 강한 상벌이 있어야 하고 그 외의 것은 지루한 부분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이어 “관습적으로 독한 부분, 게임이 있는 부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저녁과 잠자리 복불복만 내보낼 생각이었다”며 “출연자가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부분은 3분 정도로 간단히 편집해서 끝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반전이 생겼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자동차 탑승 분량 편집을 맡은 막내 PD가 무려 10분짜리로 편집해온 것. 당시 후배PD는 자동차 안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게임보다 더 재미있다는 말도 전했다.
나 PD는 “후배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일단 편집본을 봤다”며 “제작진 없이 카메라만 설치한 자동차 안에서 출연자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때가 제 인생을 갈라놓은 포인트”라며 “후배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취급하면서 다시 편집해오라고 시켰다면 1박2일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때 깨달은 교훈이 새로운 것을 만들려면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하고 뭔가 발견할 준비를 계속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 PD는 마음을 열고 안목 좋은 후배를 인정했고 새로운 버라이어티 가능성을 발견했다.
나 PD는 “섭외 본질은 필요한 곳에 필요한 자원을 넣는 것인데 우리는 (필요가 아닌) 비슷한 사람을 넣는 것만 생각했다”며 “제로에서 시작하니 시야가 넓어졌고 야생 리얼 버라이어티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김C를 섭외했다”고 밝혔다.
제로에서 다시 보라는 말은 연구 중 풀리지 않는 문제에 봉착한 연구자에게도 참고가 되는 조언이다.
나 PD는 “1박2일을 하면서 재미를 느꼈고 이전까지가 방황이었다면 평생 연구할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어 “평생의 연구주제가 리얼리티쇼 가능성이고 무엇인가를 계속 소거하고 아날로그적 일상으로 가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며 “그래서 만든 것이 삼시세끼”라고 말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