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출연연 예산은 4조6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민간수탁 예산은 11.2%에 불과하다. 나머지 88.8%는 출연금과 정부수탁 과제에 의존한다. 출연연이 민간 기업에 필요한 연구개발(R&D)을 외면하고 정부 재원에 의존하는 ‘나홀로 연구’에 머무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R&D 거버넌스를 바꾸고 프라운호퍼형 출연연 혁신을 모색하는 것은 이 같은 문제점에서 출발했다. 그간 우리나라 R&D는 외형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규모를 키웠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12%씩 증가했다.
2013년 기준 R&D 투자 규모는 542억달러로 세계 6위 수준이다. GDP 대비 비중은 4.15%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상근연구원 수와 경제활동인구 1000명당 연구원 비중은 각각 세계 6위, 5위에 이른다.
국가 차원에서 기술 개발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R&D 투자 규모는 확대됐지만 동시에 비효율, 중복, 부실 사업 폐해도 늘어났다. 정부와 민간 R&D의 영역이 중복됐다. 잊을 만하면 연구비 유용 문제가 발생했다. 추격형 R&D에 머물면서 혁신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정부 연구비를 타내려 성공 가능성이 높은 안정적인 기술 개발에 머물렀다. 도전적이고 창의적 R&D 정신은 잊혀져갔다.
비효율성을 찾아내야 할 연구관리 기능은 오히려 기관·조직을 늘리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우리 정부 R&D 전문관리기관은 현재 16개 부처에 18개나 된다. 대규모 사업이나 특정 산업 R&D 예산이 신설될 때마다 새로운 기관이 만들어진 탓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우리나라처럼 개별 부처에 몇 개씩 관리기관을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 기술 개발을 이끌어야 할 출연연은 ‘정부 예산 바라기’로 전락했다. 출연연이 대학, 중소기업과 정부 과제 수주 경쟁에 뛰어들었다. 자연스레 기업은 출연연을 외면했다. 기업은 기술이 필요하면 자체 개발하고 자금이 필요하면 정부 R&D 과제를 수탁하고자 출연연과 경쟁했다.
출연연을 민간 기업이 스스로 찾아와 기술 개발을 의뢰하는 ‘기업 도우미’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연구기관 관계자는 “기업이 돈을 들고 찾아와 줄서서 기술 개발을 부탁할 정도로 출연연 경쟁력이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민간, 산학연 R&D 기능이 중첩되는 문제도 발생했다. 민간 R&D 개발연구 비중이 70%에 달하는데 정부 R&D 역시 40% 이상을 개발연구에 치중했다. 정부는 민간기업이 단독 수행하기 힘든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데 비슷한 내용을 중복 연구하는 상황이다.
정부의 R&D 혁신안은 이처럼 산업현장 수요와 실제 R&D 과제 간 괴리가 큰 문제를 해소하면서 전략 없는 R&D 투자 확대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겠다는 것이다. 선도형 R&D로 창조경제를 이끌 핵심 동력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정부 R&D 혁신 시도에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정부 R&D 문제점인 예산 프로세스 혁신은 추진되지 못했다. ‘과학기술전략본부’가 신설돼도 기재부와 미래부로 이원화된 R&D 예산 절차는 현행대로 유지된다. 혁신안 수립 작업에 참여한 정부 관계자는 “예산 문제도 논의하려 했으나 R&D를 뛰어넘는 정부 전체로 혁신 작업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앞으로 마련될 후속 이행계획도 쉽지 않은 과제다. 혁신안 수립을 앞두고 18개 전문관리기관 개편설이 나돌자 해당 기관이 들썩였다. 기관 통폐합이라는 민감한 주제 때문이다. 구체적인 관리기관 재편안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부처, 기관, 국회 상임위 간 파워싸움이 벌어지면 ‘배가 산으로 가는’ 엉뚱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도 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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