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스템반도체 업계에 좋은 기류가 감지됐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대통령이 시스템반도체 중요성을 언급하며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의지를 직접 밝혔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1분기 세계 D램 시장 70%를 점유했다. D램 1위 기업 삼성전자 점유율은 43%다. 세계 반도체 치킨게임을 견디고 실적 부진에서 탈출한 SK하이닉스도 매 분기 실적 고공행진 중이다. 과거 D램 시장을 이끈 일본 기업을 제치고 한국 기업이 시장을 장악했다.
반면에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D램 산업의 화려한 성적표에 비해 초라하다. 지난 15년간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 사업을 펼쳤지만 대만 미디어텍 같은 세계적인 기업은 배출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 일각에서는 한국 D램 산업 위상이 점점 높아지자 ‘반도체 산업이 세계적 수준인데 왜 정부가 지원해야 하느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고위 정책 결정자들이 국내 반도체 시장에 이해도가 낮은 탓이 크다.
삼성전자가 인텔을 누르고 세계 반도체 1위 기업으로 올라서는 게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온 뒤 시스템반도체 예산을 확보하기 더 어려워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다. 실제로 최근에는 정부 지원 사업 중 반도체 부문은 신규 사업을 배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유력했다.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만드는 핵심은 시스템반도체다. NXP가 프리스케일을 인수한 것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 반도체 기업은 앞으로 열릴 사물인터넷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인수합병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계는 조용하다. 신기술 개발 여력이 부족하고 적극적으로 인수합병을 하거나 투자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탓도 크다. 개발하고 싶은 제품은 많은데 반도체 설계 전문 인력이 부족해 다 못 만든다며 쓴웃음을 짓는 경영자가 많다.
대통령이 직접 시스템반도체 가치를 재조명하고 적극 육성할 필요를 강조한 것은 고무적이다. 정부는 그간의 지원사업 비효율성을 제대로 짚고 전략적으로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새로운 정책 틀을 마련해야 한다. 과거 나눠 먹기식 지원 사업으로 산소 호흡기 역할에 그치지 않았는지 냉정히 뒤돌아봐야 한다. 잘 골라 성장할 수 있는 기업에 양분을 주는 게 중요하다. 단기성과에 급급하지 않고 긴 안목으로 지원 사격을 하겠다는 마음가짐 역시 필요하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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