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한 대형병원에서 양복을 차려 입은 직원 세 명이 007 가방을 꺼내든다. 가방 안에는 무선통신 기술과 위치추적 등 최첨단 IT로 무장한 단말기가 들어 있다. 직원은 단말기를 꺼내 통장은 물론이고 신용카드 발급을 그 자리에서 단 몇 분 만에 처리한다. 은행 창구를 그대로 옮겨 놓은 ‘포터블 브랜치(Portable Branch)’로 금융 사각지대에 놓인 수많은 신규 고객 유치에 금융권이 들썩이고 있다.
병원과 군부대, 고등학교까지 은행 점포에서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고객 대상으로 은행이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를 표방한 포터블 브랜치가 핀테크 확산 주역으로 떠올랐다.
은행을 직접 찾는 고객이 급감하고 있다. 비대면 거래가 ATM을 포함하면 90%에 육박한다. 이는 은행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로 최소 수억원 비용이 들어가는 점포 개설보다 이를 대체할 플랫폼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다.
대안으로 포터블 브랜치가 급부상했다. 시중 은행, 지방은행과 국책은행까지 최근 포터블 브랜치를 속속 도입하고 올해 대대적인 확산 계획을 밝혔다. 포터블 브랜치는 스마트 브랜치와 태블릿 브랜치의 장점만을 도입한 핀테크 모델이다.
◇은행을 찾는 고객이 없다
2000년대 은행은 오프라인 점포 경쟁을 벌였다. 어느 은행이 가장 많은 점포망을 보유하고 있는지가 시장 지배력을 가늠하는 척도였다. 2012년 들어 경쟁은 인터넷뱅킹으로 전이됐다. 어떤 은행이 온라인을 선점했는지가 화두였다. 하지만 최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옴니채널 바람이 불면서 IT를 활용한 고객 대면을 끌어들이는 것이 은행 필수 요소가 됐다. 각각 온·오프라인 채널이 아닌 적절한 융합, 이른바 컨버전스 옴니채널 구축이 생존전략이 된 셈이다.
점포 몰락은 금융권에 조직 슬림화로 나타났다. 시중은행은 대부분 수백개 점포를 없애거나 축소하고 외국계 은행은 소매금융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은행 창구를 찾는 고객이 줄어들고 있는데 기존 창구 영업방식을 고수하는 은행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가만히 앉아서 고객을 기다리는 시대는 지났다. 이는 고객을 분류해 직접 찾아가서 대출서비스와 함께 투자 컨설팅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은행에 더 많은 이윤이 생긴다는 말이다.
미국 노동부는 “향후 10년 내에 없어지는 직종 중 하나가 은행 텔러”라고 전망했다. 진보된 IT로 텔러 업종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인력을 금융사는 ‘금융전문 컨설턴트’로 재배치하거나 찾아가는 서비스와 연계한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왜 포터블 브랜치인가
첨단 IT로 무장한 휴대 단말기 포터블 브랜치는 은행창구 환경과 동일한 기능을 007 가방 크기 단말기 하나로 해결한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과 대규모 행사장, 서비스 소외지역과 같은 곳을 직원이 직접 휴대하고 찾아가 은행 업무를 처리해준다. 고객 접촉을 확대할 수 있는 일종의 이동식 점포다. 포터블 브랜치는 외부 환경에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무선통신 기술과 위치추적, 이탈방지, CCTV 기능 등 다양한 보안기술을 집약했다. 외부에서 금융 서비스를 받지만 고객이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비밀번호 입력 암호화 등 고객 정보보안 문제도 해결했다. 은행 영업점 창구 업무에 이용하는 각종 주변장치를 내장하고 이를 획기적으로 소형화해 기동성과 효율성, 편의성을 높였다.
올해 시중은행은 본격적으로 포터블 브랜치 경쟁에 나선다. 웹케시는 최첨단 IT와 보안성을 접목한 2세대 ‘포터블 스마트 브랜치(PSB) 3.0’ 개발에 성공해 시중 은행에 공급하고 있다.
2012년 IBK기업은행과 신한은행이 수십대 단말기를 도입했고 2013년에는 하나은행과 대구은행, 농협은행, 우리은행, 부산은행, 외환은행이 도입했다. 지난해에는 산업은행과 경남은행, 국민은행, 우정사업본부가 포터블 브랜치를 시작했고 올해 국민은행 등은 전국으로 브랜치 사업을 확대한다.
금융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점도 경쟁력이다. 직장인 밀집지역과 신규 아파트 단지, 학교 행사장 등 금융소비자 수요가 몰리는 지역 중심으로 신규 계좌개설, 체크카드 발급, 전자금융 등 기본 업무와 전문 금융 상담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창구 갈 시간이 없는 공단 지역 내 근로자와 중소기업 대상으로 외화송금과 환전거래 등 맞춤형 서비스도 제공한다.
인터넷뱅킹, 모바일뱅킹 서비스가 기존 오프라인 업무를 대체하기보다 상호 보완관계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반면에 포터블 브랜치는 오프라인 은행 업무를 100% 수행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터치 기반 전자서식 적용 기능 등으로 페이퍼리스를 구현해 수십장에 이르는 은행 종이 서류를 대체했다는 점도 시사점이 크다.
최근 핀테크 바람이 불고 있다. 은행과 증권사를 비롯한 여러 플레이어는 이제 고객 IT 수요에 부합한 금융서비스를 발굴해야 한다. 서비스를 보다 쉽고 간편하게, 효율적으로 이용하도록 도와주는 결제와 송금, 자산관리, 거래 플랫폼, 크라우드 펀딩, 개인 간 금융대출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최근 비대면 채널 거래 비중이 높아지면서 은행창구에서 직원과 마주 앉아 업무를 처리하는 대면 채널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에 따른 은행권 점포 축소 움직임과 맞물려 신규 고객 유치, 상품 가입, 기존 거래고객 전속화를 위한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현재 핀테크 비즈니스 근간을 만들 수 없다는 지적이다.
강대성 제노솔루션 대표는 “핀테크의 추상적인 비즈니스에서 벗어나 포터블 브랜치와 연계한 맞춤형 금융서비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표] 금융권 포터블 브랜치 현황 (자료-각 사 취합)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