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중동의 일로만 여겼던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가 한국에 상륙하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첫 확진환자 발생 후 보건당국이 추가 확산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지만 무려 15명이나 확진환자가 발생하며 빠르게 확산하는 모양새다.
감염자와 밀접 접촉했던 의심환자가 검역망을 뚫고 중국으로 출국하고 감염자와 같은 병원에서 외래 진료 대기 중이던 사람이 감염되는 등 예상 밖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확진환자 절반 이상이 격리 대상자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보건당국의 초기 판단과 대응이 부실하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국에 상륙한 메르스 전파력이 기존 사례보다 월등히 강하자 일각에서는 변종 바이러스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밀접 접촉자 기준을 현재보다 더 완화하고 검역체계를 강화하는 등 더욱 철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치사율 40%에 치료약도 없어
메르스는 지난 2012년 4월부터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MERS-CoV)’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인체감염에 의한 급성 호흡기감염병이며 지난 16일 기준으로 중동과 유럽 등 23개국에서 총 1142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감염환자 97.8%인 1117명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지역에서 발생했다. 감염환자 중에는 40.7%인 465명이 사망해 치사율이 40%가 넘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보통 2~14일 잠복기를 거쳐 증상이 발생한다. 바이러스가 체내에 침입하면 인체 내에서 증식하는 기간을 거쳐 몸 밖으로 배출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증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증상 발생 이전인 잠복기 동안에는 바이러스가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전염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상은 38℃ 이상 발열, 기침, 호흡곤란, 숨 가쁨 등이 나타난다. 급성신부전 등 만성질환이 있거나 면역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증상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항바이러스제나 백신이 없다는 점이다. 환자 증상에 따라 적절한 내과적 치료를 하는 것이 전부다.
◇낙타가 매개체
메르스는 현재까지 명확한 감염경로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모든 환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중동지역,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연관돼 있다. 해외여행이나 해외근무 등으로 중동지역에서 체류한 사람들이다. 국내 첫 메르스 환자인 A씨(68)도 4월과 5월에 걸쳐 약 보름간 바레인에 체류하며 농작물 재배 관련 일을 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여행도 했다.
또 한 가지 메르스 감염 경로 특징 중 하나는 낙타와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감염환자 중에는 낙타 시장 또는 농장을 방문했거나 낙타 체험프로그램 참여 등으로 낙타와 접촉한 사례가 많았다. 낙타는 메르스 주요 매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박쥐나 염소가 매개체라는 분석도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중동지역을 여행할 경우 낙타 등 동물 접촉을 자제하고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과 접촉을 피하라고 권고한다.
증상이 발생한 환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사람은 최종 접촉일부터 14일간 자가 격리와 모니터링을 실시하며 그 사이 발열이나 호흡기증상 등 이상증상이 나타나면 바이러스 유전자 검사를 시행한다.
◇확산 막기 위해 대응 수위 높여야
국내 첫 메르스 환자 A씨는 지난 5월 11일부터 발열과 기침 증상이 나타났고 3개 병원을 거쳐 20일 확진판정을 받았다. 이후 11일 만에 환자는 15명으로 빠르게 늘었다.
당초 보건당국은 메르스 확산 가능성이 낮다는 입장이었다. 메르스 전파는 환자와 같은 공간에 동시에 머물면서 밀접한 접촉이 있는 경우에 제한적으로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환자가 이미 거쳐 간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메르스에 감염될 가능성은 없다고 단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메르스가 전파된 양상을 보면 그동안 알려진 것과 다른 부분이 있다. 우선 메르스 전염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메르스 환자 1명이 평균 0.7명을 전염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국내는 A씨 한명이 무려 14명을 전염시켰다. 평균 전염력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 변종바이러스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현재까지 환자에게 채취한 바이러스 유전자는 기존 중동지역 바이러스와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밀접 접촉에 의해 전파된다고 했지만 밀접 접촉으로 보기 애매한 경우가 있다. 다섯 번째 환자인 의사는 A씨를 문진하는 짧은 시간에 감염됐다. 여섯 번째 환자는 같은 병동에 있었지만 직접접촉 여부는 불분명하다. 여섯 번째 환자는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지 않았다.
현재 격리 조치하는 밀접 접촉자 분류 기준은 가운과 마스크, 장갑 등 적절한 개인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환자와 2m 이내에서 1시간 이상 머문 경우다. 여기에 해당하면 자가 격리 조치한다. 밀접 접촉자 기준을 더 완화해 자가 격리나 관리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기에 보건당국이 의심환자를 체크하지 못해 중국으로 출국한 일도 발생했다. 세 번째 환자 아들이자 네 번째 환자 동생인 K씨는 메르스 의심증상으로 병원을 찾았지만 의료진에게 가족이 메르스 환자임을 밝히지 않았다. K씨는 의료진 권고를 듣지 않고 홍콩을 거쳐 중국 출장길에 올랐고, 뒤늦게 이를 파악한 보건당국이 중국에 알려 현지에서 격리 조치됐다. K씨는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한 사람을 놓치는 바람에 K씨 직장 동료는 물론이고 치료했던 의료진, 같은 비행기에 탑승했던 승객과 승무원 등 수백명이 감염 위기에 처했다. 또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주변국에 전파할 위험도 있다. 혹시나 K씨로 인한 감염자가 발생했다면 메르스가 추가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며 추적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건당국은 뒤늦게 메르스 확진환자와 접촉한 사람 가운데 자가 격리 대상 누락자가 있는 지 전수 재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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