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FTA 정식서명으로 한국산 제품 중국 진출 기회가 확대된다. 중국은 이미 13억 인구를 자랑하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이다. 향후 성장성이 더 크다는 점에서 우리 기업은 FTA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또 일부 업종은 중국산 제품 유입으로 타격이 우려된다. 피해 업종 분석과 지원이 필요하다. 업종별 한중 FTA 기상도를 살펴봤다.
우리 전자산업은 스마트폰, TV,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이 세계시장에서 1~3위를 차지하며 기술력과 인지도에서 앞서 있다. 국내 대기업은 이미 중국에 생산라인을 갖춰 프리미엄 제품을 중국에 공급하고 있다. 설비 투자도 중국에서 확대하고 있어 한중 FTA 효과는 크지 않다. 대신 간접혜택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 제품 인식 개선과 수출입 인프라 개선 효과가 예상된다.
중소형 생활가전 업계는 다르다. 생활가전 제품 대부분이 한중 FTA에서 10년 이내 관세 철폐 대상에 포함됐다. 진공청소기·전기밥솥·전자레인지·전기담요 등은 ‘일반품목(NT) 10’으로 분류돼 5~10년 내에 점진적으로 관세 인하가 진행된다.
현재 중국 관세는 10~16%에 이른다. 유커족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전기밥솥과 믹서, 의료기기 등은 상당한 수혜가 기대된다. 중국 생활가전 시장은 지난해 1조3800억위안으로 전년 대비 18.8% 성장했다. 국내 기업의 중국 시장 점유율 확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10년 동안 중국산 가전 기술력이 빠르게 추격하면 이는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중국산 저가 제품이 국내에 현재보다 더 저가로 유입되는 것도 경계 대상이다.
한중 FTA는 통신 분야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몰고 올 전망이다. 양국은 상대국 사업자가 비차별적 조건으로 서비스에 접근하고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합의했다. 해외 업체에 대한 중국 통신규제가 완화되면 우리의 앞선 방송·이동통신 기술과 모바일 기기, 장비 수출이 늘어날 전망이다.
공정 경쟁 여건이 마련돼 포화된 국내 시장을 벗어나 넓은 중국 시장으로 진출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5세대(5G) 이동통신 공동개발 등 한국과 중국 이통사 간 교류와 협력도 증가할 전망이다. 이통사는 통신 서비스와 망 구축뿐만 아니라 의료, 헬스케어, 사물인터넷(IoT) 등 연관 사업 진출을 강화할 수 있다. 관련 업계의 동반성장도 기대된다.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중국 장비 업계가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국내 사업을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지금도 국내 통신장비 업계는 화웨이 등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에 신음하고 있다. FTA는 중소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정부 정책이 족쇄가 될 수 있다. 국내 기업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통신장비 업계 한 관계자는 “거래라는 것은 본래 줄 게 있어야 받을 게 있는 건데 현재 우리 통신장비 업계가 중국에 제공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지적하고 “국내 산업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고 해외 진출을 독려하는 게 순서”라고 말했다.
반도체는 이미 무관세 품목이어서 관세 철폐 효과는 크지 않다. 양국 간 반도체 교역량 증가를 통한 시장 확대가 가장 기대되는 대목이다.
한국의 반도체 대중국 수출은 2013년 217억달러로 전년 대비 21.2%, 2014년 262억달러로 20.7% 증가했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반도체는 2013년 65억달러로 7.8%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2014년 81억달러로 24.5% 늘었다.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은 중국에서 낸드플래시 반도체를 생산하고 후공정 분야 공장을 운영하는 등 현지 생산거점을 마련한 지 오래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한중 FTA 체결로 가장 큰 수혜를 기대했던 품목이지만 액정표시장치(LCD)에 붙는 관세가 10년 내 단계적으로 철폐되는 것으로 정리되면서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발효 후 8년 동안 관세 5%를 유지하다가 9년, 10년이 되는 해 각각 2.5%씩 낮춰져 폐지된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8년 뒤에도 우리가 중국보다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데다 국내 업체가 중국내 현지 생산을 강화하고 있어 체결 효과는 거의 누리지 못할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콘텐츠·엔터테인먼트 업계는 13억 내수시장이 생길 것으로 기대했다. 기술과 영향력 면에서 우리 콘텐츠가 영향력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에서다.
하지만 당장 콘텐츠기업이 중국 시장 직접 진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역성과 중앙정부가 실타래 같은 규제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은 중국에서 직접 사업을 할 수 없다. 인터넷 역시 중국 정부 정치·경제적 규제에 묶여 있다. 지난해 카카오톡과 라인은 검열 문제로 사실상 서비스를 중단했다. 규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는지가 콘텐츠 업계 관심사다.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한중 공동 합작 콘텐츠 제작이 활기를 띨 전망이다.
저작권보호 강화조치는 방송사업자나 콘텐츠기업에 긍정적이다. 우리 방송사업자는 중국에서 적극적인 콘텐츠 보호와 계약 체결에 나설 수 있는 ‘사전허가권’을 가진다. 인터넷상에서 이뤄지는 저작권 침해 행위도 중국 정부의 대응조치 의무화에 따른 보호강화 효과가 기대된다.
그동안 우리 방송사는 중국 내 방송 프로그램의 무단 녹화 등 복제와 불법 DVD의 온·오프라인 판매행위, 방송신호 불법 수신 행위 등에 대해 ‘사후금지권’ 행사만 가능했다. 사전허가권 도입으로 합법적 계약 유도와 사용료 수입 증대 등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자동차는 양허 품목에서 제외돼 국내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자동차가 양허 대상에서 빠진 것은 중국 현지 생산이 많은 국내 완성차 업계 현실이 작용했다.
현대차가 베이징 1, 2, 3 공장에 이어 4공장(창저우)과 5공장(충칭) 건설에 착수해 현지화를 가속화하고 있어 FTA 실익이 적다. 중국으로 수출되는 완성차 물량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도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 기아차도 3공장 증설로 생산량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부품 업계도 관세 철폐에 따른 수출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면서 고부가가치화와 현지 직접 생산에 집중할 전망이다. 완성차 관세가 철폐되면 GM·폴크스바겐·도요타 등이 중국에서 생산한 자동차가 국내로 수입될 수 있다는 업계 우려도 반영됐다. 중·장기적으로 국내 자동차 생산 기반을 취약하게 할 수 있는 위협 요인으로 꼽혔다. 중국도 자동차를 최우선 보호(초민감) 업종에 포함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만큼 양국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는 양국 최대 주력 산업으로 상호 이해 관계로 인해 양허 품목에서 제외된 측면이 크다”며 “중국 자동차 시장이 급속히 위축되지 않는 한 국내 자동차 업계에 끼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석유화학분야는 한중 FTA 관련 수혜분야로 꼽히는 주요 산업 중 하나다. 2013년 중국과 교역에서 약 217억원 흑자를 기록할 정도로, 대중국 수출이 활발했다.
이온교환수지·고흡수성수지·폴리우레탄 등 첨단 고부가가치 제품은 우리가 우위를 점하고 있어 시장선점 효과를 노릴 수 있다. 고부가가치 제품의 중국 현지 공급이 달리는 것도 기회 요인이다.
유활기유 등 고율관세가 적용되고 있는 제품의 단계적 관세 철폐는 남겨진 숙제다. 최근 중국은 자국 내 정유나 석유화학 시설을 늘리면서 범용제품 분야에서 우리와 경쟁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앞으로 협의에서 범용제품 관세를 얼마나 낮추는지에 따라 우리나라 석유화학 업계 희비가 갈릴 수 있다.
건설과 엔지니어링 기업은 중국에서 면허 등급 판정 시 한국은 물론 다른 국가에서 달성한 실적도 인정받게 된다. 우리 에너지·환경 기업은 중국 기업이 성장하면서 현지 수주실적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타국 수주실적 인정은 이 같은 약점을 보완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양종석 이경민 안호천 조정형 배옥진 송혜영 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