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변리사법과 세무사법은 변호사에게 변리사와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주고 있다. 세무사법은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은 주되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으며 장부기장업무도 할 수 없도록 막았다. 하지만 변리사법은 54년간 변호사의 변리사 명칭 사용이나 업무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변리사는 특허출원, 침해여부 감정 및 소송대리의 세 가지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런데 변리사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받은 변호사가 어떻게 고도의 기술 내용을 기재하여야 하는 특허출원명세서를 작성하는지, 특허침해여부를 감정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특허청에 등록한 변리사 8885명 중 자동으로 변리사 자격을 부여받은 변호사 숫자가 무려 5379명이다. 전체 변리사의 60.5%이다. 더구나 이들 중 99% 이상 변호사는 변리사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직무연수도 거부하고 있다.
미국은 변호사와 변리사 자격이 엄연히 구별되어 있다. 변리사는 특허출원과 특허침해소송을 할 수 있지만, 변호사는 특허출원업무를 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변호사에게 변리사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 한·EU 자유무역협정에 따라 2016년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외국변호사들이 한국 변호사와 합작법인을 설립함으로써 우리 변리사 시장만 개방해야 하는 넌센스가 벌어지게 됐다.
미국에서 듀퐁이 코오롱을 상대로 청구한 아라미드섬유기술 영업비밀침해소송은 6년만에 코오롱이 2억7500만달러를 지불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또 삼성과 애플의 세기적인 스마트폰 특허침해소송에서 양 기업은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던 소송은 취하하되 미국에서만은 계속 진행한다고 발표하였다. 미국소송의 1심에서 9억3000만달러의 배상 평결이 있었으나 항소법원은 삼성이 애플의 ‘트레이드 드레스’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해 삼성은 5억4800만 달러만 애플에 배상하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위 두 사건은 모두 엄청난 이해관계가 걸린 가운데 법률적 쟁점과 첨단기술이 엮인 복잡한 소송이다. 물론 변호사와 변리사의 실직적인 협력이 절대적인 소송들이다.
2010년 한국갤럽이 특허소송경험이 있는 우리 기업들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4.3%가 변호사가 법정대리인으로 선임된 특허침해 소송사건에서 당사자가 원할 경우 변리사를 선택적 공동소송대리인으로 추가하는 것이 좋겠다고 답했다. 일본은 2001년 최고재판소 산하 사법제도개혁심의회가 정부에 건의해 변리사에게 공동소송 대리권을 승인했다. 이와는 반대로 대한변호사협회에서는 변리사제도를 아예 폐지하고 로스쿨로 대체하자고 한다. 현실적으로 로스쿨 학생들이 변호사 시험과목에만 매달리고 있어서 지식재산권법이나 기술분야에 관한 교육이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제안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변리사의 선택적 공동소송대리에 관한 법 개정안은 17대와 18대 국회에서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사위원회의 심의조차 없이 회기만료로 폐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기법안과는 별도로 변호사 출신 이상민 법사위원장이 변호사의 변리사 자동자격 취득을 폐지하는 법률안을 17대, 18대에 이어 이번에 또다시 국회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이번 19대 국회에서는 변호사 출신의원들의 반대로 소관 상임위원회마저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기술 고도화시대에 변호사가 첨단기술을 다루는 변리사 실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처리하기는 불가능하다. 지식재산관련 분쟁해결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관련 인력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식재산기본법의 취지, 1998년부터 변리사들이 법원에서 원만하게 심결취소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사실, 변리사업무의 국제성, 창조경제의 핵심인 지식재산이 국가경쟁력의 핵심인 점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볼 때, 이제는 변호사에 대한 변리사 자격의 자동부여를 폐기할 시기가 성숙하였다.
변리사가 특허침해소송에서 선택적 공동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법의 취지에도 부합하며 시장원리에 따른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것이 우리나라 모든 과학기술단체의 염원이다.
김명신 명신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mskim@mspa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