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방송사와 유료방송사업자가 58건에 달하는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양측이 방송 콘텐츠 대가 산정 기준을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연쇄 법정다툼으로 비화됐다. 지상파는 IPTV 사업자를 상대로 추가 소송까지 예고했다. 방송 블랙아웃(송출중단) 등 시청자 피해가 우려된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 외산 미디어 플랫폼 공세로 가뜩이나 힘든 방송업계가 자중지란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중재에 나서야 할 정책 당국은 “사업자 간 계약에 개입할 수 없다”며 팔짱을 끼고 있다.
8일 방송업계에 따르면 지상파 계열 방송사가 유료방송 사업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등 형사고소·민사소송은 이달 기준 55건으로 집계됐다. JCN울산방송이 지상파방송에 반소·별소 3건을 제기한 것을 포함하면 총 58건에 달하는 민형사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지상파방송사는 IPTV 사업자 주문형비디오(VoD) 정산 누락, 무단 할인 상품 제공 등에 관해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IPTV 3사에 개별 소송을 제기하면 전체 소송 건수는 60건을 넘는다.
지상파는 유료방송이 콘텐츠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상파 콘텐츠로 수익을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료방송이 콘텐츠 공급 계약에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상파 관계자는 “법원은 그동안 지상파 재송신 대가에 관한 판례를 수차례 내려 논란을 끝냈다”며 “협상이 정상 진행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유료방송 관계자는 “유료방송은 난시청 지역에 지상파 콘텐츠를 보급해 지상파 광고 수익 확대 등에 공헌했다”며 “일방적으로 산정한 콘텐츠 대가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는 최근 대규모 소송전으로 비화된 지상파와 유료방송 갈등을 관망하고 있다. 정부가 시장 원리에 따라 진행되는 사업자 간 계약에 끼어들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지상파 재송신 논란은 지난 1기 방통위 시절 점화됐다. 2기 방통위에서 이경재 전 방통위원장은 지난 2013년 의무재송신 범위 확대 등을 언급하며 지상파 재송신 분쟁을 해결할 근본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지난해 ‘3기 방통위 비전 및 7대 정책 과제’ 발표 시 “현재로서는 지상파방송 의무 재전송 확대 방안 검토는 없다”고 못 박았다. 방통위 정책 방향이 불과 1년 만에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3기 방통위는 시청자 피해가 발생하는 블랙아웃 등에만 재정제도 등으로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방통위가 근본적 대책이 아닌 사후약방문식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방통위가 지상파를, 미래부가 유료방송을 각각 규제·진흥하는 분리형 정책 탓에 정부의 방송 산업 거버넌스가 약화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송업계 간 분쟁을 중재할 담당 부처가 명확지 않아 갈등이 매년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차세대 미디어에 적합한 새로운 규제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N스크린, 동글 OTT 등으로 방송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지상파 계열 콘텐츠연합플랫폼(CAP)과 이통 3사 간 콘텐츠 공급계약이 최종 결렬됐다. 수백만명에 달하는 모바일IPTV 가입자는 앞으로 지상파 콘텐츠를 시청할 수 없다. 정부는 N스크린 서비스 일종인 모바일IPTV가 현행법상 부가통신서비스로 구분되기 때문에 규제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방송법에 포함되지 않는 N스크린은 실시간 지상파 재송신과 달리 서비스가 중단돼도 규제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