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특허청이 개최한 테크페어에서 한 젊은 여성이 강단에 올랐다. 미국 특허 심사관 1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이 행사는 주로 임원이 강연했지만 이 날 행사는 이례적으로 실무진인 책임연구원이 맡았다.
발표자는 SK하이닉스 미래기술연구원 소속 이현진 책임연구원(37)이다. 이 연구원은 20나노급 D램 소자를 개발해온 전문 지식을 유창한 영어 프레젠테이션에 녹여 청중에게 전달했다. 회사 특허 기술 경쟁력을 알리고 최신 반도체 기술 트렌드를 소개해 호평을 받았다. SK하이닉스 임원이 아닌 실무진이 이 자리에서 강연한 것은 처음이다.
이현진 연구원은 SK하이닉스 20나노급 D램 개발 주역 중 하나다. 20나노급 D램은 회사가 2년 연속 최대 실적 달성을 이끈 핵심 제품이다. 자체 기술력으로 세계 D램 시장에서 한국 반도체 입지를 한 단계 높인 효자다.
이 연구원은 20나노급 D램에서 트랜지스터와 커패시터를 연결하는 게이트모듈을 개발했다.
KAIST 대학원 시절부터 반도체 소자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로 평가받았다. 국내외 저널과 학회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고 권위 있는 반도체 학회 ‘VLSI 심포지엄’에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연속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2007년 발표한 논문으로 동일 학회에서 최우수 학생 논문상을 받았다. 지난 2008년에는 동일 학회에 44나노 D램 집적화 관련 논문을 하이라이트 세션에서 발표했다.
지난 2007년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에 입사한 후에는 동일 학회에 44나노 D램 집적화 관련 논문을 하이라이트 세션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미세공정은 칩 회로 폭을 줄여 웨이퍼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이다. 회로 선폭이 좁아질수록 누설 전류가 많아져 미세공정 기술 개발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기술 난이도가 높고 거대한 연구개발 투자금이 필요해지면서 소수 세계 D램 제조사만 미세공정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연구원은 “20나노급 D램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후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성공적인 결과를 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오랜 시도 끝에 20나노급 D램 개발에 성공하면서 SK하이닉스는 PC, 서버, 모바일용 D램 시장에서 경쟁력을 한 단계 높였다.
이 연구원은 성공 비결로 ‘집요한 메모’를 꼽았다. 프로젝트 진행 상황과 앞으로의 방향을 꼼꼼하게 메모하고 정리한 것이 연구개발에 큰 도움이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반도체 공정 특성 상 다양한 변수가 발생한다”며 “문제가 생길 때마다 메모를 들춰 지난 과정을 살피면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개선방안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경험 많은 동료 의견을 경청하고 꼼꼼히 메모했다”며 “조직문화가 비교적 수평적이고 프로젝트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은데 모두가 업무에 적극적이어서 팀워크를 조율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원은 현재 차세대 D램 개발을 맡고 있다. 10년 후에 리더로서 인정받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딸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뛰어난 엔지니어가 되는 게 꿈”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