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한 중소기업이 세계 최대 북미 전기차 충전기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한국 전기차분야 완성차 대기업을 제외하고 해외에 사업장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차별화된 기술과 발 빠른 시장 대응이 북미에도 통할지 주목된다.
시그넷시스템즈(대표 황호철)는 지난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전기차 완·급속충전기 조립공장을 포함한 현지 지사를 설립했다고 20일 밝혔다. 시그넷은 지난 2013년 닛산 ‘리프’, 기아차 ‘쏘울EV’, 포드 등 완성차뿐 아니라 미국 현지 업체를 통해 약 250기 급속충전기를 미국에 공급했다. 그간 미국 수출액만 80억원에 달한다.
이번 미국지사 설립은 현지에 깔린 충전기에 대한 유지보수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후 급성장이 예상되는 미국 충전기 영업 확대를 위한 다목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시그넷은 전기차용 급속충전기 글로벌 유력 규격인 일본 차데모(CHAdeMO)와 미국 UL인증을 모두 획득한 한국 유일 업체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규격인 차데모·국제표준(ISO) ‘콤보(TYPE1)’ 방식 제품 생산도 가능하다.
시그넷 핵심 기술은 고주파 스위칭 알고리즘을 적용해 병렬연결이 가능하도록 모듈화시킨 충전기다. 출력 안정성은 물론이고 적용 분야별 자유로운 제품 확장과 자동화 생산까지 가능하다. 양산에 따른 가격경쟁력도 다른 제품에 비해 30% 저렴하고 제품 크기 역시 30%가량 작다. 매달 300기 급속 충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자동화 생산라인까지 갖췄다.
급속충전기 제품도 다양하게 갖췄다. 지난해 차데모와 콤보 방식을 동시 지원하는 100㎾h급 급속충전기를 우리나라 처음 선보였다. 급속충전기 시장 주류인 50㎾h급 충전기와 비교해 출력량은 두 배지만 제품 크기는 더 작다. 최근엔 유럽에 20㎾h급 중속충전기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까지 유럽에 수출한 급속충전기는 약 200기로 한국과 미국을 합치면 올해 말까지 누적 공급량은 약 650기에 달한다. 세계 운영 중인 약 5000~6000대 급속충전기 중 약 10%가 이 회사 제품이다. 일본 내수 시장에만 치중하는 자국 업체를 제외하고 스위스 ABB와 포르투갈 엠파섹 다음으로 글로벌 3위 수준 시장점유율을 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전망도 밝다. BMW·폴크스바겐 등과도 공급을 위한 제품테스트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마루베니와 전기차용 급속충전기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유럽과 북미 지역 등 해외 시장에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그넷은 제품과 기술 개발을, 마루베니는 마케팅과 전기차충전소 등 사업을 주도한다.
황호철 시그넷시스템즈 사장은 “2~3년 전부터 미국 수출한 제품의 유지보수와 현지 시장 확대를 위해선 꼭 필요한 결정이었다”며 “독보적 기술력으로 제품 고도화, 다양화에 주력할 뿐 현지 문화를 잘 아는 업체와 협력해 해외 시장을 확대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