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바야흐로 IT시대로 접어들어 서비스 확충을 통한 우선권 잡기에 혈안이 돼 있다. 과거 우리나라가 인프라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 인터넷 접속 속도 세계 1위를 자랑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위도 잠시였고 현재는 상위권에 속하고 있으며 등위는 점점 하락하는 실정이다. 우리에게 뒤졌던 구미 각국도 유무선 인터넷 속도 증대에 노력해 우리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내가 지금 글을 작성하고 있는 노르웨이는 인구가 500만 정도고 나라 길이가 남북으로 매우 길지만 무선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사용하는 속도는 국내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가 보편화돼 기차 안에서도 불편함이 없고 더욱이 놀랍게도 사용자 편의를 위해 기차 좌석마다 전원 공급 장치까지 제공하고 있다. 인프라가 비슷해지고 나면 서비스 경쟁만이 남게 되므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 정책이 같이 나아가야 한다.
근래에 애플이 가입형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100여 국가에서 개시하면서 한국은 제외하고 향후 일정도 불투명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시장이 작아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하기는 명확하지가 못하다. 우리보다 인구가 적은 나라에서도 서비스를 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 누락에 분개하기 이전에 이러한 원인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선 우리나라 IT 시장 개방성을 고려해 보자. 시장은 자유로운 경쟁으로 조성되고 우수한 제품이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IT 분야에서 과연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가. 우리나라 정책에서 자주 듣는 용어가 한국형, 시장보호라는 단어다. 이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기업 경쟁력 확보라는 사실을 앞에 내세우고 있다. 외국 거대 기업이나 국내 대기업 독점이나 횡포를 막고 전문기술을 지닌 중소기업이 시장에 뿌리를 내릴 때까지 이들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이러한 생각은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시작돼 우리 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주었으나 그동안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교역국 위치에 도달했으며 세계 1등을 외치는 기업이 다수 생겨났고, 시장 상황도 기술 장벽 없는 무역을 표방하는 WTO 체제로 변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국제 협상을 할 때 한국적인 상황이나 예외를 단골 메뉴로 주장한다.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른 것은 대폭 양보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상대편은 우리 약점이 노출된 상태이므로 그것만 공략하면 나머지는 편하게 얻을 수 있어 협상이 매우 쉬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은 세계 시장 흐름이나 방향을 직시하지 못하고 정치적인 논리나 감성적인 결정에만 매달린 결과다. 그러므로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부터 처리해 나가는 정공법을 택하는 것이 아니고 변방을 지키려다 중요한 것을 놓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게 된다.
다음으로 동양은 예부터 별도 문자를 갖고 있었으므로 이를 로마자 형태로 표기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표준화 필요성이 대두된 분야다. 이 논의 과정에서 정해진 방식으로 하면 우리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 있다. 예를 들어 김포공항은 Kimpo라고 오랫동안 사용했으나 이 규칙이 적용이 된 이후에는 Gimpo로 표기하게 됐다. 이에 따라 공항 명칭 약어로 사용하던 KMP가 GMP로 바뀌게 됐다. 아마 공항이 신설되지 않고 명칭이 바뀐 희귀한 사례일 것이다. 국제협력이 많은 대학에도 표기법 변화에 따라 홈페이지 주소를 바꾸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해 일부 대학은 과거 명칭을, 다른 대학은 새로운 표기의 명칭을 사용하면서 외국에 같은 학교임을 설명해야 하는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또 다른 예로는 도로명 표기법을 들 수가 있다. 이미 내비게이션이 보편화된 상황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방식 도입은 혼란을 가져온다는 것을 예측한 상태에서도 강행하고 있다. 외국 제도는 거리 이름만 알면 번지 위치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서울과 같이 거대한 도시에 일일이 가로 명칭을 부여하기에는 고유명사 수가 부족하다. 그러므로 1길에서 시작해 수천 길까지 번호가 늘어나는데 이 정도면 위치가 어디인지 더 애매해진다.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주소체계에서 누락된 동 이름과 아파트 이름 등을 추가하니 우편 주소 길이가 기존보다 훨씬 길어지는 문제점이 발생했으나 그대로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우편번호 체계도 여섯 자리에서 다섯 자리로 축소해 시행한다. 그러면 기존 자릿수와 병존에 따른 혼란과 불편함이 매우 클 것으로 예측되는데 홍보도 별로 없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행정 당국이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고 도입함에 따라 주소는 누더기가 되고 우편번호도 당분간 이분화돼 자기 집 주소와 관련된 종류 네 가지를 외워야 하는 시민 불편 사태가 예고되고 있다. 이러한 것을 안내하는 홈페이지나 앱을 만들어 보급한다고 하니 잘못된 정책에 추가적인 지출만 늘고 있는 현실이다.
요즈음 융합 이야기가 한창이다. 대표적인 예가 핀테크다. 재무와 기술 융합에 따라 IT 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이야기만 무성할 뿐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잘못하다가는 애플페이나 알리바바에 시장을 내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우리 금융체계는 아직도 공인인증서를 비롯한 각종 액티브X에 익숙해 간편한 결제에 따른 사고 위험성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사기꾼이 없어서 간단히 결제를 하도록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금융거래는 자신의 판단에 따른 문제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사기에 걸린 때는 배상을 해주고 보험이나 구상권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기를 사전에 막는다고 각종 모듈을 깔고 불편하게 하는 것은 결국 기득권 지키기에 안주하고 있다는 것밖에 안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새로 발생하는 서비스 개념이 하나도 도입될 수 없다.
산업화는 늦었으나 정보화는 앞서자는 구호가 무색하게 기존 방식으로 규제와 기득권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사이 어느덧 우리는 IT 생태계의 갈라파고스 섬이 돼가고 있다. 신규 서비스 도입이나 비개방화에 따른 또는 국내 산업 보호를 외치면서 규제를 강행하고 있는 한 좋은 IT 서비스는 불가능하고 저가입찰만큼이나 공공부문에도 저급 서비스만이 도입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터넷 매립 공사로 세계 1등 스피드를 자랑한 이후 언제 고급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이것이 안 되면 모든 서비스가 전 세계가 개방된 요즈음 해외로, 직구로 나가는 안타까운 현실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권영빈 중앙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전자정보연구정보센터장) ybkwon@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