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전자태그인식방식(RFID)·유비쿼터스 센서 네트워크(USN) 열풍은 실로 대단했다. RFID, 리더, 미들웨어, EPC표준 기술은 물류·교통·금융·통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산업 IT화를 선도할 최고의 블루칩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2010년부터 거품이 걷히며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결과를 두고 전문가들은 특정 사업목적에 맞춰진 단기적 개별 프로젝트, 공급자 중심의 R&D, 폐쇄적 산업 생태계, 저가 출혈 경쟁 등을 주요 패인으로 꼽는다.
이후 C(Cloud)·B(BigData)·M(Mobility) IT 토양 위에서 RFID/USN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물인터넷(IoT)은 더 현명하고 탄탄한 기술로 진화해 산업 영역과 온라인-오프라인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저성장 위기를 극복하고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신기술로 주목 받고 있다. 더불어 장밋빛 시장 전망도 나온다. 세계 시장은 2020년 1조달러, 우리나라는 17조1000억원 규모 성장을 예견하고 있다. EU는 HORIZON 2020 전략을 세워 스마트라이프 사회 구현을 위해 2020년까지 11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산업생산성을 30% 향상시키고, 중국은 감지(感知)중국을 내걸며 193개 도시를 사물인터넷 시범도시로 선정했다. 미국은 스마트 아메리카 전략을 경제 혁신 기회로 삼았다. 우리 정부 또한 이러한 초연결 혁명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해 IoT를 국가경쟁력의 핵심 어젠다로 설정하고 범국가적 추진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마냥 들떠 정부 예산을 곶감 빼내듯 써가며 여기저기 IoT 시범 사업들을 벌이다가는 RFID/USN의 아픈 전철을 또다시 밟게 될 것이다. IoT산업만큼은 초기에 틀을 잘 짜서 획기적으로 동반 확산시킬 비책을 준비해야 한다.
IoT산업은 나 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상황 인지형 네트워크 기술 개발, 오픈 HW 기반 스마트 디바이스 마련, 개방형 공통 플랫폼 구축, 글로벌 표준 마련 등을 한 기업이나 집단이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집단 지성이 필요하다. 오픈 이노베이션 방식으로 일반 소비자의 폭넓은 참여가 가능토록 하고, 수직적 단일 사업 도메인이 아닌 수평적 멀티 도메인을 지향하고 정부, 학계, 산업계, 해외기업 간 협업으로 해답을 찾아야 한다. IoT 인프라는 함께 해결하되 개별 서비스에서는 독창적 아이디어와 사업방식으로 승부를 거는 것만이 함께 생존하는 길이다.
최근 한전KDN이 전력그룹사 사장단 회의에서 전력IoT 포럼을 발의해 발족을 준비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전력그룹사, 나주 혁신도시 에너지밸리 기업과 지역 산학연 기관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기술, 서비스, 표준, 보안·안전 분야 분과를 중심으로 중장기 전력 IoT 발전방안을 수립하고 협의체를 마련할 예정이다.
전력 인프라는 인터넷을 바탕으로 한 초연결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다양한 수요에 따라 IoT와 융합은 필연적이다.
내부 수요는 센서 기반 발전설비 감시진단, 전력계통 신뢰도 평가, 배전설비 제어, 송전설비 상태감시, 가공·지중 배전설비 진단, 전력케이블 열화상태 감시진단 및 환경감시와 같은 전력공급 안정화 분야다. 전국에 산재한 전력설비 고장 발생 시 즉각 대처가 어려운 점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하다. 외부 수요는 전력 인프라를 활용해 새로운 부가서비스를 창출하는 분야다. AMI 네트워크에 IoT 기술을 융합, 노인 가구 댁내 전력사용 패턴을 분석해 급격한 변화나 이상이 있을 시 노인 건강상태를 모니터링하거나, 웨어러블 팔찌로 치매노인이 일정 활동 반경을 벗어난 징후를 포착해 보호자에게 알릴 수도 있다.
이외 전력품질 지도를 만들어 공개함으로써 신규 공장 신설 시 배전 선로 공급이 충분한 지역에 입지를 선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전기차 배터리 잔량을 고려해 최단 거리 내 EV충전소 정보를 제공하고 실시간 전력소비를 소비자에게 알려 수요반응 및 합리적 에너지 소비를 유도하는 사업 모델도 가능하다.
수요에 맞춘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 전력IoT 포럼과 같은 개방된 협의체가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일반 소비자의 폭넓은 참여를 유도한다면 전력 IoT 생태계는 더욱더 건강하고 뿌리 깊게 전력산업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준태 한전KDN 전력IT연구원장 jtlee@kd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