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들이 특별히 게임을 잘하는 이유가 있나요?”
“게임을 하면서 효율적으로 자기 능력을 향상하는 법을 배웠죠. 게임 플레이가 공부하는 방법을 찾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말, 강남 프릭업 스튜디오에서 미국, 한국, 일본, 대만에서 모인 아마추어 국가대표 게이머 6명을 만났다.
아프리카TV가 올해 처음으로 주최한 국제 대학 e스포츠 리그(AICC) 하스스톤 종목 8강 진출자인 이들은 의대(3명), 수학(1명), 컴퓨터공학(1명), 산업공학(1명) 전공자다. 청소년 시절 성적이 좋지 않았다면 들어가기 어려운 소위 ‘명문대’ 출신이 상위권을 점령했다. 공부와 게임의 상관관계가 궁금했다.
키리토 케이스케(치바대 의대 재학 중)씨는 “게임을 잘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은성호(카이스트 수학과 재학 중)씨도 “어릴 때 아마3단까지 바둑을 뒀는데 상대 수를 읽고 전략을 짜는 부분이 하스스톤을 비롯한 게임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한 명 예외 없이 임계치에 다다른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게임이라고 답했다. 엄청난 학습량을 따라가야 하는 압박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메트 오르겔(서던 캘리포니아 주립대 의대 재학 중)씨는 “일주일에 100시간 정도 전공 공부를 하는데 아마 게임이 없었다면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며 “스트레스를 풀어야 공부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 시간이 무척 소중하다”고 말했다.
장윤영(코넬대 산업공학과 졸업)씨는 “다녔던 학교가 학점을 짜게 주는 등 학업 스트레스가 강해 게임을 정신적 안도처로 삼았다”며 “보통 게임을 하면 폐쇄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안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해 교류하는 데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고 회상했다. 장 씨는 한국 게임업계에 취업하는 것을 염두에 뒀다. 일종의 ‘덕업일치(취미와 생계가 같음)’다.
부기홍(서울대 의대 재학 중)씨는 “게임에서 플레이로만 평가 받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학교 등 다른 타이틀 없이 오로지 게임 플레이에 투영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매력적이란 이야기다.
대만, 미국에서도 게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장이추(대만 국립대 컴퓨터공학과 재학 중)씨는 “어떤 학교는 게임금지를 위해 학내 인터넷 사용량을 제한한다”고 소개했다.
오르겔 씨는 “게임 터부(금기)시 되는 취미 중 하나”라고 말했고 장윤영씨는 “게임을 좋아한다고 하면 대부분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각종 ‘장애물’을 뛰어넘고 이들이 게임을 즐기는 까닭은 같다. 즐겁기 때문이다. 장이추씨는 게임을 “스스로를 단련하고 즐거움을 주는 존재”라고 정의했다.
케이스케 씨와 오르겔 씨 역시 “게임으로 인간관계가 넓어지고 한국을 여행 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케이스케 씨는 “게임은 (플레이에 대한) 자기반성이 가능한 미디어”라며 “비판적으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좀 누그러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가정에서 게임으로 인한 불화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봤더니 ‘자기절제’란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키리토씨와 부기홍씨는 입시 기간에는 아예 게임을 끊었다고 한다. 부모가 이들을 신뢰 할 수 있었던 큰 이유다.
오주양 아프리카TV 콘텐츠제작본부 상무는 “4개 지역을 대상으로 진행한 AICC 1회를 시작으로 앞으로 참여 국가를 넓혀 세계 대학생들이 e스포츠로 교류하는 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