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추격 기세는 우리나라 기간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두드러진다. 거대 자본과 내수 시장을 등에 업고 무서운 기세로 한국과 격차를 줄이고 있다. 중국발 ‘반도체·디스플레이 치킨게임’이 재현될 가능성도 크다.
이러한 변화에는 중국 세트 업체 성장이 큰 역할을 했다. 올해 2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가 애플과 삼성전자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미밴드, 체중계 등 소형 가전시장마저 접수했다. 이들의 성장 DNA를 더 이상 평가절하할 수 없는 분위기다. 골든타임은 2년 남짓하다.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중국 위협 요인과 대응 방안을 분석했다.
올해 초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 BOE가 D램 사업 진출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중국 정부가 대규모 자금을 조성했고 BOE를 비롯한 몇 개 현지 대기업이 전문인력과 기술 확보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디스플레이는 10세대 투자설이 지속적으로 나왔고 국내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한 OLED 기술 확보설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중국은 지난 2012년 5월 ‘전략적 7대 신성장 산업’을 발표하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 내수 시장을 활성화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중국 ‘국가전략성신흥산업발전규획’은 7대 신성장 산업으로 △차세대 정보기술 △바이오 △첨단장비제조 △신에너지 △신에너지 자동차 △에너지절약·환경보호 △신소재를 꼽고 20개 세부산업으로 분류했다. 조세와 금융을 지원하고 인재 양성과 기술 혁신 세부 전략도 마련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전자핵심기초산업’으로 분류했다.
세부 목표를 살펴보면 핵심 전자부품, 첨단 통합칩, 대규모 집적회로 제조장비 등 중대 사업을 전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모바일 인터넷, 디지털·아날로그 혼합, 정보보안, 디지털TV, 센서 등 칩을 중점 개발하고 8~12인치 생산라인 핵심 설비와 계측기, 소재 부문 연구개발을 강화한다.
디스플레이는 6세대 이상 TFT LCD 생산라인 공정과 제조장비 기술, 고화질 초박형 PDP와 OLED 등 신형 디스플레이 기술 연구개발 지원 방안을 포함했다.
정부는 기반 기술 연구개발과 공공서비스를 할 수 있는 플랫폼과 실험실을 구축하고 기업 간 협력과 인수합병(M&A)을 장려한다고도 명시했다. 기초제품 생산 기업과 완제품 생산 기업 간 협력을 지원해 주력기업을 육성하는 전략도 편다.
고부가가치 산업을 전략적으로 키우려는 정부 의지는 강력하다. 2020년까지 연간 총 9000억위안(약 166조원) 이상 연구개발 자금을 투입하고 총 80억위안(약 15조원) 재정을 지원한다.
◇든든한 총알 장전하고 세계 반도체 기업 사냥 ‘정조준’
지난해 6월 중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한 국부펀드를 조성했다. 중앙정부는 약 21조원을 조달했고 지방 정부는 약 7조원 재원을 마련했다. 대부분 자국 D램 산업 육성을 위한 것이다.
중국 산업정보기술부(MIIT)는 우한에 위치한 파운드리 기업 XMC를 D램 산업 발전 중점 지원기업으로 선정하는 등 현지에서 D램 등 메모리 생산 준비를 시작했다.
현지 1위 디스플레이 기업 BOE는 정부 지원을 받아 디스플레이용 구동칩을 직접 제조하는 데 나섰다. 향후 D램과 낸드플래시로 사업 영역을 넓힐 가능성이 높다. 중국 정부는 BOE에 반도체산업 투자 펀드 40억위안(약 7000억원)을 제공하고 BOE가 15억위안(약 3000억원)을 자체적으로 마련했다.
해외 유수 기업 사냥도 활발하다. 국내 특수 메모리 설계기업인 제주반도체와 피델릭스 지분을 현지 기업이 인수했다.
중국 칭화유니그룹이 미국 마이크론 인수를 공개 제안한 것이 대표 사례다. 제안 금액은 230억달러(약 26조원)로 만약 인수가 성사되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두 번째로 큰 딜이 탄생하는 셈이다. 중국에서 해외 기업을 인수한 사례 중 가장 큰 규모다. 반도체 사업 숙원인 D램과 낸드플래시 기술을 모두 확보할 수 있어 거액을 투자할 의지를 밝힌 셈이다.
미국 이미지센서(CIS) 기업 옴니비전도 중국 사모펀드에 팔렸다. 옴니비전은 애플 아이폰과 국내 기업 등에 칩을 공급한다. 중국이 세계 CIS 시장에서 소니(39.5%)에 이어 2위인 옴니비전(16.2%)을 갖게 되면서 단숨에 선두로 올라선다. 삼성전자는 15.7% 점유율로 3위다.
미국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제조기업 마벨도 중국이 인수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현지 스마트폰 제조사가 반도체 설계 자회사 혹은 내부적으로 직접 AP를 개발해 자사 제품에 탑재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현지 기업 간 AP 기술력 확보 경쟁에 불이 붙은 탓이다. 마벨은 중저가용 AP 시장을 중심으로 활약했으나 중국 AP 기업과 대만 미디어텍이 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면서 입지가 축소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 반도체 기업 사냥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마이크론 인수 여부를 떠나 세계적으로 기업 인수합병에 거액 투자 의지를 천명한 셈이어서 중국과 다양한 형태로 사업 제휴를 맺으려는 시도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 ‘몰빵 투자’ 디스플레이
중국 정부는 그동안 디스플레이 산업을 미래성장 육성사업으로 키우고자 수년간 일관되고 지속적인 지원책을 펼쳐왔다. 특히 자국 기업이 패널 공장 설립 시 지방 정부가 공동 투자하는 방식으로 대규모 자금을 지원했다. 적게는 수천억원, 많게는 수조원에 달한다.
법인세 감면과 세금 면제 등 세제 혜택도 파격적으로 제공해왔다. 중국은 LCD 패널 제조 기술을 첨단 기술로 인정해 법인세를 25%에서 15%로 낮췄다. 현재 우리나라는 22%다. 자국 내 설비를 사용할 시 관련 업체에 세금을 면제해줬다.
자국산 제품 구매를 촉진하고 외국 기업 진입을 억제하는 정책도 동시에 시행했다. 중국 정부는 12차 5개년(2011~2015년) 계획에 2015년 기준 LCD 패널자급률 목표를 80%로 설정했다. 정부 물품은 자국산 우선 구매 정책을 실시했다. 외국 기업 신규 투자 시 사전 승인을 요구했다.
32인치 이상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관세는 3%에서 5%로 인상하고 인듐주석산화물(ITO) 터치 필름은 5%에서 8%로 높였다. 철벽 수비로 자국 양적 성장을 이끌어 왔다.
지난해 10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와 공업정보화부(공신부)는 ‘2014~2016년 신형 디스플레이 산업 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오는 2016년까지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는 LTPS와 OLED, 옥사이드 TFT와 같은 최신 공정 기술에 집중 투자한다. 2016년까지 디스플레이 면적기준 출하량 세계 2위, 전 세계 점유율 20% 이상, 산업 총규모 3000억위안 이상을 달성한다는 구체적 목표치도 제시했다. 그동안 양적 성장을 이룬 디스플레이 산업을 질적 성장으로 이끌기 위한 또 다른 전략이다.
패널뿐만 아니라 후발산업인 소재·장비·부품산업을 아우르는 산업 생태계 육성에도 적극 나선다. 국산화를 이용한 기술 내재화를 목표로 했다. 최신 기술 확보에는 해외 기업과 협력에 힘을 쏟고 있다.
올해 새롭게 발표한 ‘중국제조 2025’에도 중국 정부는 OLED 등 신형 디스플레이 육성 전략을 포함시켰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OLED 관련 업체와 합작사 설립이나 지분 투자 등을 활발히 논의하고 있다”며 “정부 지원에 힘입은 중국 패널 기업 성장세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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