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은 요즘 슈퍼컴퓨터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퇴역을 앞둔 기상청 슈퍼컴퓨터 3호기를 가져갈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두기만 해도 연간 운영비가 60억원에 달하는 몸값이 문제다.
기상청은 최근 충북 오창 슈퍼컴퓨터센터에서 슈퍼컴 3호기 무상 인수 의향이 있는 부산대학교 등 세 기관 관계자 대상 설명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 참가한 관계자는 운영 비용 얘기가 나오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슈퍼컴 3호기 운영 비용이 좀 많이 들 것이라고 각오하고 왔지만 매년 60억원씩 써야 한다는 설명을 듣더니 고개를 저었다. 장비를 무상으로 받아도 운영비 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연말 퇴역을 앞둔 기상청 슈퍼컴 3호기가 갈 곳 없는 애물단지 신세다. 과거 슈퍼컴 1호기와 2호기도 무상 인수 조건에도 받겠다는 곳이 없어 창고신세로 전락했는데 아직 현역으로 쓸 수 있는 슈퍼컴 3호기도 같은 전철을 밟게 생겼다.
슈퍼컴 3호기(해온·해담)는 지난 2009년 9월 도입 당시 약 500억원 국고가 투입된 고가장비다. 기상청은 이 컴퓨터를 지난 상반기까지 대국민 일기예보와 기상정보 서비스에 썼으며 이후 슈퍼컴 4호기 초기분이 투입됐고 3호기는 오는 연말 기상청에서 물러난다.
기상청에 따르면 슈퍼컴 3호기는 아직 충분히 현역으로 뛸 수 있는 ‘스펙’을 갖고 있다. 기상청이 예보정확도와 기상정보 품질 향상을 위해 슈퍼컴 4호기로 교체하는 것이지 3호기가 ‘고물’이라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기상청은 기후모델 고도화를 위해 현재보다 20배 정도 많은 계산능력이 필요했고 여기에 적합한 슈퍼컴 4호기를 도입했다.
슈퍼컴 3호기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수십∼수천개 계산용 코어를 동시에 투입해야 하는 대규모 작업이 필요하다. 고도 연산작업이 필요한 곳에서 아직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덩치’가 너무 크다.
3호기를 무상 이관하더라도 이전 시 시스템 분해·운송·재결합 등에 필요한 비용이 발생한다. 슈퍼컴 3호기를 운영하려면 최소 200㎡ 이상 전산실, 복잡한 전기·기계 기반설비가 필요하다. 수랭식 시스템이기 때문에 냉수를 공급할 수 있는 냉동기·냉각탑·냉각펌프 등도 필수다.
부담이 큰 것은 시스템 운영 규모에 비례하는 전기요금과 유지관리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기상청 운영 전례로 보면 연간 약 60억원이 소요된다.
김태희 기상청 슈퍼컴퓨터운영과장은 “슈퍼컴 3호기는 지구시스템과 대기과학 분야뿐 아니라 고도 연산작업이 필요한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며 “과거 1·2호기처럼 사용 종료 직후 폐기처분되지 않도록 재활용할 곳을 찾고 있지만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영국 기상청은 슈퍼컴퓨터 도입 주기를 2∼3년으로 하고 설치한 지 5년 정도 경과한 장비를 신규 시스템 설치 계약사에서 철거·회수하도록 조치했다. 지난 2008년 운영 중이던 일본 NEC 슈퍼컴퓨터를 신규 시스템 도입 계약을 체결한 미국 IBM에 철거·회수하도록 도입 시 계약 조항에 포함시켰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