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노믹스]전문기업과 특허가 중요한 이유

김인현 한국공간정보통신 사장 ihkim@ksic.net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숫자와 고용비율을 이야기할 때 흔히 ‘9988’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기업 중 99%가 중소기업이며, 고용의 88%를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최근에는 ‘구십 구세(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자’는 뜻으로도 쓰인다.

[IP노믹스]전문기업과 특허가 중요한 이유

우리나라 경제를 논함에 있어 중소기업의 역할과 중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기업 광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주요 언론사들조차 중소기업 활성화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심지어 대기업들도 중소기업들과의 발전적인 상생관계 구축에 힘쓰겠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의 현실은 여전히 녹녹치 않다.

최근 필자는 우리나라 최초로 공간정보시스템(GIS) 소프트웨어를 일본에 수출하는데 성공했다. 수 년간의 치밀한 시장조사와 소프트웨어 현지화 경험이 풍부한 파트너와 상생을 한 쾌거였다.

이 과정에서 수 차례 일본을 방문하며 참으로 부러운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생존과 발전을 도모하는 ‘공존공생(共存共生)형 경제 생태계다. 대기업 리더십과 ‘전문기업’으로 불리는 각 지방의 중소기업의 전문성이 일본 경제를 활기차게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슈퍼 갑질’과 ‘불법 복제’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가는 중소기업에 대한 기사를 심심찮게 접하는 필자로서는 부러움과 함께 참담함을 느끼곤 했다.

웨이즈(Waze)나 구글어스(Google earth) 등을 만든 대만과 이스라엘 기업들이 수 조원에 매각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를 대단한 성공사례로 칭송하며 부러워한다. 물론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매각된 사례가 있다.

최근 국민 내비게이션 앱으로 유명세를 탄 ‘김기사’를 만든 ㈜록앤올이 약 600억원에 ㈜카카오에 매각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더욱 놀라움을 표명한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600억원 규모의 ‘대박사례’라며 놀랐지만, 외국에서는 기술력에 비해 너무나도 싼 가격에 놀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구글어스(Google earth)보다 7년이나 앞서 세계최초의 3차원 공간정보(GIS) 소프트웨어를 만든 중소기업도 있다. 이 회사는 정부의 벤치마크테스트(BMT)에서 1위를 하고 선진국에 수출도 하고 있지만, 막상 국내시장에서는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와 소스코드 불법유출로 인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처한 진짜 ‘현실’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압축적인 혹은 효율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펼쳐왔다.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 불가피한 부분이 있었으며, 나름 상당한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약자인 ‘을’을 상대로 한 대기업의 천박한 ‘갑질’과 편법적인 고용승계, 땅콩 회항 등의 비도덕적 행위가 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지난 40여 년간 이어져온 대기업 위주 성장정책의 부작용과 그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 사회는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경쟁을 지향한다. 철 지난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을 고집한다면 앞으로도 고용의 확대와 부(富)의 재분배 등을 기대하긴 어렵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저녁이 있는 삶’은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져만 갈 것이다.

대기업의 자동화된 공장은 더 이상 많은 근로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다수 일자리를 로봇이 차지한 지 오래다. 기름진 탐욕과 도덕적 타락은 천년왕국도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우리나라의 근면하고 성실한 국민들이 지난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금자탑과 ‘한강의 기적’이 한 순간에 사상누각처럼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변화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선진 대한민국의 꿈을 실현하려면 선진국의 전문기업 창업제도와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벤치마크 하는 한편, 중소 전문기업 및 특허 보유 기업에 대한 집중적인 육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