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기업에 기술 유출을 당해도 과도한 소송 비용과 시간 부담으로 적극 나서지 못하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가 기업과 시장 현황 파악에 나섰다. 기술 유출 정황을 빠르게 포착하고 주요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다. 최근 중국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육성에 나서면서 국내 관련 부품·장비 기술을 빼돌리는 사례가 다수 포착되면서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는 최근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부품·장비 제조사를 방문해 기업과 시장 현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기업 내부적으로 기술 유출 문제를 겪고 있는지 여부와 관리 실태를 조사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산업기밀보호센터를 적극 활용할 것을 권유하기 위해서다. 국정원이 직접 기업을 방문하며 현황을 파악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디스플레이 분야를 중심으로 중국에 주요 기술을 빼돌리는 사례가 여러 건 포착됐다. 규모가 영세한 부품 기업에서 관련 기술을 중국에 넘겨 회사가 고사 위기에 처하는 등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 여럿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한 산업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한다. 40나노급 이하 D램 관련 기술, 30나노급 이하 낸드플래시 관련 기술, 8세대급 이상 TFT LCD 패널 기술, 30나노급 이하 파운드리 기술,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 OLED) 패널 기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기술 등이 전기전자 분야 국가 핵심기술에 속한다.
최근 국내 기업과 정부는 OLED 기술이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특히 우려한다. 중국 기업 LCD 생산 기술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섰고 OLED 수요가 늘면서 직접 생산 채비에 속도를 냈기 때문이다. OLED 기술 난이도가 높은 만큼 한국이 디스플레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OLED 기술 보안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때문에 관련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도 중국 수출에 제약을 받는 등 민감한 분위기다.
메모리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국산화를 추진하면서 소자·설계·생산 등 관련 기술을 빠르게 확보하고 있어 전문 인력·기술을 지키는 게 중요해졌다. 대만은 현지 메모리 기업 이노테라와 난야테크놀로지의 찰스 카오 회장이 중국 칭화유니그룹에 합류한다는 소문이 도는 등 인력과 기술이 중국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빨라졌다.
산업기밀보호센터는 주요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기업이 보유한 기술·인력 현황을 우선 파악할 예정이다. 각 기업에서 기술 유출 현황이 포착되면 센터에 신고할 것도 당부한다. 센터는 기술 유출 제보를 받으면 검찰과 공조해 수사하는 체계를 갖췄다.
중국 현지 기업에 부품과 장비를 수출하고 싶지만 기술 유출 문제를 우려해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는 현황도 함께 파악한다. 글로벌 장비·부품 기업들이 중국에 제품을 판매하는 만큼 당장 국내 시장에 영향력이 낮은 기술을 중심으로 중국 수출 문제를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중소 부품·장비기업에서 주요 기술을 중국에 빼돌려 어려움에 처한 곳이 많다”며 “중소기업이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것보다 산업기밀보호센터가 수사하는 게 빠르고 효율적인 만큼, 보호해야 할 기술은 지키고 합리적인 수출은 방안을 모색하는 등 최근 변화한 시장 환경에 따른 대책을 갖추기 위한 준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